추신수(39·SSG)는 지난 5일 작심 발언을 꺼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달리 미흡했던 국내 구장의 원정팀 훈련 시설이 문제였다. 경기 중 실내 배팅 케이지를 활용해 타격 훈련이 가능한 MLB와 달리, KBO리그 구장에서 타자들은 따로 경기 중 훈련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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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잠실, 리모델링 거쳐도 아쉬운 사직, 대전, 수원
추신수를 비롯해 KBO리그 관계자들이 가장 비판하는 곳은 서울 잠실야구장이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를 위해 70년대 설계된 곳이다. 단순 낙후 여부를 떠나 프로야구가 출범되기도 전에 만들어진 탓에 공간 자체가 협소하다. 더구나 홈팀인 LG와 두산이 1, 3루 라커룸을 각자 쓰다보니 원정팀은 오랜 시간 아예 라커룸 없이 잠실을 사용해야 했다.
2013년 뒤늦게 보수 공사로 원정 라커룸이 만들어졌지만, 열악한 상황은 여전하다. 20여개의 라커만 빼곡하게 차 있을 뿐 수십 명의 성인 남성들이 쉬기엔 턱없이 비좁다. 그마저도 라커 수가 부족하니 여전히 복도 신세를 지는 이들이 나온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정 라커룸이 좁아 선수들이 불편해한다. 라커 수가 적다보니 저연차 선수들의 경우 쉴 공간이 부족해 짐을 복도에 두고 쉬어야 한다"고 밝혔다.
샤워실도 부족하다. 잠실의 원정팀 공간은 둘로 나눠져 있다. 라커룸과 별도로 식당과 샤워실이 합쳐진 곳을 원정팀에 제공하는데, 식당의 테이블도 작고 샤워부스 수가 단 3개에 불과하다. KBO리그 1군 엔트리는 28명. 경기 당일 출전하지 않은 이들을 고려해도 20여 명이 씻고 나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시리즈를 끝내고 지방으로 옮기는 팀들에겐 잠실 경기가 더 고역이다. 실제로 지난 6월 10일 NC 외국인 타자 애런 알테어가 잠실 LG전 후 대구로 이동했다가 감기 몸살로 결장한 사례도 발생했다. 씻지 못한 채 온 몸이 땀과 비로 젖은 상태로 에어컨을 쐬면서 지방으로 이동한 게 문제였다.
리모델링을 마친 지방 구장들은 사정이 좀 낫다. 역시 오래된 탓에 공간은 비교적 좁지만, 지자체와 구단의 협조 아래 시설을 리모델링했다. 20여 개 라커룸에 적게는 8개, 많게는 13개의 샤워 부스를 갖춰둔 덕에 잠실에 비하면 불편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하지만 여전히 주어진 공간은 제한적이다. 20세기 기준으로 지어진 탓에 공간 배정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리모델링에도 불구하고 많은 구단 관계자들은 이들 구장에 대해 입을 모아 "여전히 라커룸이 좁고, 라커 수가 부족하다. "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식당이 좁아 휴게 공간이 없고 샤워 시설은 여전히 불편하다. 식사 테이블조차 없는 곳도 있다"면서 "굳이 한 구장을 특정하지 않아도 너무 많다"고 리그 전반적인 환경이 아직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차이는 가장 최근 지어진 광주(2014년 개장), 대구(2016년 개장), 창원(2020년 개장)과 비교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 신축 구장들은 원정팀에 30여 개의 라커, 10여 개의 샤워 부스와 30여 평의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가장 최근에 지어진 창원은 감독실, 식당, 트레이닝실을 포함한 원정 팀 공간을 합치면 약 107평에 이른다. 없는 공간을 짜내야 하는 곳과는 환경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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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팀을 못 쓰는 실내 배팅 케이지, 발상의 전환 가능할까
야구계에서는 선수들의 휴식 공간이 가장 화두에 올랐지만, 추신수가 더 중점에 뒀던 부분은 실내 훈련 시설이다. 취재 결과, 배팅 케이지 시설을 갖춘 곳도 있었지만, 원정팀이 사용하기보다는 우천시 실외 타격훈련을 대체하는 곳에 가까웠다. 고척, 광주, 대구, 창원 등 신축에 드는 구장들은 모두 실내 배팅 케이지를 포함한 실내 타격 훈련장을 보유했지만, 경기 중 훈련 용도가 아닌 우천 상황에 대한 대안에 가깝다. 우천과 상관없이 원정팀을 위한 실내 타격훈련 시설을 제공하는 곳은 고척과 올해 리모델링한 사직뿐이었다.
한편 우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척의 경우 원정팀 배팅 케이지는 있지만 사용이 불가능했다. 키움 측은 “원정팀 실내 훈련 시설은 서울시설공단 소속으로 되어있는 곳인데, 공단은 배팅 케이지가 선수용이 아니라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알린 바 있다”고 답했다.
경기중 타격 훈련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KBO리그에서 대타로 출전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더그아웃 근처에서 투수의 공을 확인하며 스윙 훈련을 하는데 익숙하다. 메이저리그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변화의 목소리가 먼저 나오는 이유일 수도 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도 "롯데가 원정팀 실내 타격 훈련장을 만든 것은 메이저리그 출신인 성민규 단장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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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과정에서 전문가 역할 필요
문제 해결이 정체된 건 아니다. 각 구장의 시설은 느리게나마 꾸준히 개선 중이다. 대부분의 지방 구장들이 최근 수 년간 리모델링을 거쳤다. 추신수의 복귀와 함께 불거진 잠실구장은 올 시즌 종료 후 리모델링이 예정되어 있다. 한 LG 관계자는 "LG, 두산 관계자와 함께 서울시가 리모델링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가 구단 의견을 수렴해가면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추신수 본인의 홈 구장인 인천 SSG랜더스 필드도 내년 시즌 내부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확실한 해결책이 되려면 과정에서 야구계 관계자들, 현장 선수단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모델링을 거친 지방구장들도 여전히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온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 개선하는 어려운 과제인만큼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미다. 허구연 위원은 "선수 경기력이 저하되는 문제인만큼 책임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면서 "잠실야구장 리모델링에 전문가 의견이 많이 수렴되길 바란다. 라커룸뿐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점을 점검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