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은메달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쇼트트랙 여자 계주 대표팀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3연속 금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전력이 저하되고 내홍으로 어수선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쾌거라는 평가다.
한국은 13일 중국 베이징 캐피탈인도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결승전에서 4분3초63을 기록,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다섯 번째 메달이다.
한국은 초반 레이스에서 밀렸다. 10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는 1위 네덜란드와의 격차도 벌어졌다. 하지만 에이스 최민정, '맏언니' 김아랑이 주자로 나설 때마다 거리를 좁혔다.
김아랑이 4바퀴를 남겨두고 3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최민정이 주특기 바깥 코스 공략으로 2위에 자리했다. 1위로 달리고 있던 네덜란드까지 압박했다. 비록 네덜란드 에이스 수잔 슐팅은 제치지 못했지만, 2위로 골인하며 쇼트트랙 '최강국' 자존심을 지켰다. 금메달을 외친 중국을 3위로 밀어냈다.
지난해 10월, 쇼트트랙 대표팀에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생겼다. 최민정과 함께 대표팀 '투톱'을 이루던 심석희가 동료들을 험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 고의 충돌을 모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포착됐다. 심석희는 이 논란 속에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여기에 대회 직전 국가대표 선발전 3위 김지유마저 부상으로 이탈했다. 경기력향상위원회의 판단이 작용했는데, 선수가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러한 결정에 부당함을 전하며 다시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3연속 금메달 획득은 어려워 보였다. 개인전에 나선 김아랑과 이유빈의 컨디션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9일 열린 준결승전에서 최민정이 화려한 막판 스퍼트로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황대헌이 개인전 1500m 금메달, 남자 계주 5000m 결승 진출 등 좋은 결과가 이어졌다. 최민정은 11일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분위기를 바꾼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여자 계주에서도 자존심을 지켜냈다. 경기 후 선수들을 서로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네 선수는 한껏 들떠있었다. 부담감을 이겨낸 최민정, 그런 최민정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 김아랑, 개인전 아픔을 털어낸 이유빈, 올림픽 첫 출전 압박을 떨친 서휘민까지 말이다.
이유빈은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훈련했다. 이 4명이 함께 연습한 기간이 짧다면 짧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서휘민도 "긴장이 많이 됐지만, 언니·오빠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좋은 말도 해준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김아랑은 "결승전에 들어가기 전에 최민정 선수의 부담이 클 거 같아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준비했던 것을 다 보여주자'라고 얘기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것 같아서 은메달도 값지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딴 메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민정은 자책했다. 그는 "계주가 역대 올림픽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래서 그런 전통을 이어가길 바랐다. 안 좋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팀원들은 잘했는데, 내가 부족해서 미안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시간 내서 함께 훈련해준 남자 선수들, 여기 옆에 팀원들 정말 고맙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팀 코리아가 만든 값진 은메달.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대회 10일 차, 가장 환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