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찬은 유독 형사 역할과 인연이 많다. 최근작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에서 광수대 열혈 형사 조필두로 시청자들을 각인시켰다. 전작들에서도 형사(경찰) 역할로 다양한 활약을 펼쳤다. 이쯤되면 전문배우라 불릴 만도 한데 지찬은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라 전문배우로 불리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감독님들이 내 눈이 형사 눈빛이라고 한다”며 어울림을 부인하지 않는 투였다.
-‘돼지의 왕’과 ‘어게인 마이 라이프’(‘어겐마’)까지 화제작에 연달아 얼굴을 비췄는데. “두 작품을 같이 촬영했다. ‘돼지의 왕’은 가을이 배경이라 지난 겨울에 촬영했다. 너무 추워서 그 안에서 나오는 처절함이 드라마에 보이더라. 핫팩을 붙여도 모자라 어느 때는 추위를 잊으려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연기했을 정도였다. ‘어겐마’는 고등학생으로 첫 등장을 해야 했는데 ‘돼지의 왕’때 벌크업을 해놓은 몸으로 촬영에 들어가 교복 중 가장 큰 사이즈인 115가 딱 맞을 정도였다. ‘어겐마’ 감독님이 한숨을 쉬며 ‘이런 고등학생이 어디 있냐’고 했다. 우려를 들었기에 연기로 승부하겠다는 마음이 일어 이를 꽉 깨물었었다.”
-‘돼지의 왕’ 때 얼마나 증량을 했길래. “김대진 감독이 운동하는 사람처럼 덩치가 좋다. 오디션 때 ‘나처럼 몸을 만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묻길래 호기롭게 ‘3개월이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었다. 캐스팅되고 15킬로를 찌웠다. 운동만으로 몸이 안 커져서 안 먹은게 없었다. 건강식으로 클린하게 먹으면 예쁘게 커지고, 덩치를 키우려면 마구 먹어야 했다. 짜장면, 아귀찜 등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다 먹었다. 습관적으로 야식도 먹으니 얼굴이 부었다. 분장팀이 ‘어디 아프냐’고 묻기도 했다.”
-반대로 ‘어겐마’ 때는 몸집을 어떻게 줄였나. “식단으로 몸집을 불렸던 것과 달리 닭가슴살 등을 먹으며 덩치를 급히 줄이지 않고 얼굴을 샤프하게 보이려 노력했다. 내 몸이 크긴 컸나보더라. 연석을 연기한 최민이 덩치가 커서 자기 역할을 해도 됐을 거라고 했다.” -두 작품을 모두 끝낸 요즘은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나. “벌써 9개월 때 헬스장에 매일 가서 운동하고 있다. 증량할 때 먹고 싶은 것들을 다 먹어서 요즘 입맛이 없다. 먹는 것도 지겹다. 아! ‘돼지의 왕’ 촬영이 끝나는 시점부터는 유산소를 많이 하고 있다.”
-‘돼지의 왕’에서 형사 역할, ‘어겐마’에서는 천재 해커를 연기했는데. “‘돼지의 왕’ 조필두는 광수대 형사인데 그야말로 몸으로 뛰는 형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운동선수로 특채된 느낌이랄까.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겐마’의 박상만은 해커이긴 한데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하고 싶었다. 웹소설, 웹툰 원작의 모습과 다르게 가져가려 했다. 싱크로율이 높다는 말보다 내가 만든, 재창조한 상만이고 싶었다.”
-전작부터 형사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영화 ‘내안의 그놈’, ‘극한직업’, ‘양자물리학’ 등에서 형사 역을 연기했다. 오디션을 가면 내 눈이 사람이 읽는다고들 하더라. 눈이 ‘형사 눈빛’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내게 어떤 이미지가 있고, 나를 떠올렸을 때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게 참 좋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촬영하며 얼어죽을 뻔해서 이제 사무직 역할을 더 하고 싶다. 하하하. 사실 전문배우로 불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그래도 형사 연기를 위해 준비한 게 많다던데. “경찰서를 직접 찾아 형사님들을 많이 만났다.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어떤 역을 맡게 되면 실제 종사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모습을 보기도 한다. 검사 역할 때는 재판도 참관했다. ‘미스터 기간제’ 때 변호사 역할을 했는데 현장에서 다른 변호사를 맡은 배우가 어디서 많이 싶더니 대원외고 후배였다. ‘우리 서로 밥그릇 뺏지 말자’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웃음).” -현봉식, 이희준 등 배우들과 인연이 있던데. “‘어겐마’에 출연한 현봉식의 첫 연극무대 데뷔를 같이 했다. 당시에 친구니까 봉식이와 반말을 했는데 스태프가 ‘어디 사가지 없이 선배에게 반말하냐’고 혼났었다. 이희준 형은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동기다.”
-대원외고 출신으로 연기를 전공한 이력도 범상치 않은데. “중국어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연기가 하고 싶어 2학년 2학기 때 일반고로 전학갔다. 집안의 반대가 정말 컸다. 아버지가 반년 동안 나랑 밥을 안 드셨다. 한예종 합격한 뒤부터는 응원을 해줬다.”
-왜 연기가, 배우가 꿈이었나. “어릴 때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고교 진학 후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을 보고 실패했구나 생각했다. 그 뒤로 계속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연기에 눈을 떴다. 겁이 없었나보다. 연기를 하니 슈퍼맨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재능보다 노력이 더 좋은 편이다. 될 때까지 노력한다. 지금껏 작품도 오디션을 보고 출연했다. 수려한 외모로 캐스팅될 것도 아니니 노력을 믿고 열심히 연기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얇고 길게 가고 싶다. 하하하. 배우로 지칭되기보다 또 작업하고 싶은 배우, 같이 작업하는게 즐거운 사람이고 싶다. ‘돼지의 왕’을 함께 촬영한 채정안 누나가 그런 사람이었다. 누나가 오면 현장이 환해졌다. 나 역시 그런 배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