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종합격투기 UFC 페더급(65.8㎏) 타이틀전에서 4라운드 TKO로 진 '코리안 좀비' 정찬성(35)은 경기 직후 이렇게 말했다.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도 했다. 패배한 파이터에게 일반적으로 보이는 분함이나 아쉬움의 감정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이 아닌 단단한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답답함과 무력감을 토해냈다. 정찬성의 상대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34·호주)는 그토록 강한 상대였다.
볼카노프스키는 더 강력한 상대를 쓰러뜨렸다. 3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276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도전자 맥스 할로웨이(31·미국)에게 3-0 판정승을 거뒀다. 부심 3명 모두 50-45로 볼카노프스키의 승리를 선언할 만큼 일방적인 경기였다.
할로웨이는 볼카노프스키 이전의 챔피언이다. 상대를 쉬지 않고 압박하는 볼륨펀처다. UFC 한 경기 최다 유효타(445회) 라운드 최다 유효타(141회) 등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다. 그의 타격에 페더급의 전설 조제 알도(36·브라질)가 두 차례나 무너졌다. 지난 1월 열린 칼빈 케이터(34·미국)와의 경기 중에는 "내가 UFC 최고 복서야"라고 외치는 여유도 보였다.
그런 할로웨이도 '벽'을 쓰러뜨리진 못했다. 게다가 볼카노프스키는 '움직이는 벽'이었다. 키(1m68㎝)는 작지만 긴 리치와 빠른 스텝을 앞세워 아웃복싱을 구사했다. 할로웨이의 거리를 영리하게 무너뜨린 볼카노프스키는 유효타에서 199-127로 압도했다. 할로웨이의 얼굴은 완전히 망가졌으나, 챔피언은 깨끗했다. 이 경기를 김대환 TVN스포츠 해설위원은 "이런 스타일이라면 볼카노프스키가 환갑까지 경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탄했다.
알도 이후 페더급 최고의 챔피언이었던 할로웨이는 2019년 12월 4차 방어전을 치렀다. 당시 상대가 볼카노프스키였다. 과거 체중 100㎏가 넘었던 볼카노프스키는 단단하고 냉정했다. 강력한 레그킥으로 할로웨의의 소나기 펀치에 맞서 판정승을 거뒀다.
할로웨이는 곧바로 재도전을 선언했다. 8개월이 지난 2020년 7월 볼카노프스키에게 도전했다. 1차전에서 약점으로 드러났던 레그킥에 대한 방어로 할로웨이는 무에타이를 들고 나왔다. 앞발을 들고 전진하는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에 1차전처럼 볼카노프스키의 공격이 유효하지 않았다. 결과는 볼카노프스키의 판정승. 모호한 판정에 대해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는 "나쁜 판정이었다. 할로웨이는 분명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대결에서 전력 차이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2차전 때 할로웨이의 '무한 압박'에 당황했던 볼카노프스키는 영리하게 치고 빠졌다. 클린치 싸움에서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보였다.
볼카노프스키는 웬만한 페더급 강자를 모두 이겼다. 이제 적수가 없다. 볼카노프스키는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바쁘게 경기를 계속하고 싶다. 라이트급(70.3㎏) 타이틀전을 원한다"며 두 체급 석권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 공석인 라이트급 전 챔피언은 찰스 올리베이라(33·브라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