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분대로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는 현주가 부럽다.” 배우 정은채가 ‘안나’에서 연기한 현주 캐릭터를 시샘했다. OTT 쿠팡플레이의 6부작 ‘안나’에서 정은채가 맡은 현주는 유미(수지 분)의 보필을 받던 부잣집 딸이었다. 구질하던 유미가 명품 옷을 두른 사모님으로 나타나자 신경전을 벌이는 인물이다.
‘안나’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사소한 거짓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며 정체성과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유미이자 안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공개된 소감은. “대중에게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가 제일 궁금하고 기대되는 지점이었다. 성공 여부는 잘 모른다. 공개되고 주위에 반응이 어떤지 물어봤는데 좋다는 평가를 들었다. 본가가 부산이라 지방에서 반응부터 접했다. ‘반응이 좋구나’ 싶었다.”
-작품의 첫 인상은 어땠나. “대본을 받은 시기에 읽었던 시나리오 중 단연 돋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에 힘이 느껴졌다. 작품이 꼭 세상에 나오길 바랐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맞는 배우들이 모이면 좋겠다는 느낌이 강했다. 또 해봤던 캐릭터를 반복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도하지 않았던 캐릭터에 용기를 냈다. 도전적인 작품이다.”
-현주를 어떻게 이해했나. “처음부터 캐릭터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었다. 악역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지 않았다. 유미도 그렇고 ‘안나’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이 양면성을 띈다. 인물 모두 다면적이며 인간의 부끄러운 부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현주도 이를 표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현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을 지니는데 이 부분이 캐릭터가 가진 힘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자기 확신도 강하다.” -‘파친코’에 이어 ‘안나’에서도 해맑고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눈에 띄는데. “현주는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얄미운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익살스럽고 귀엽고 재치 있으며 친근한 면을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야 캐릭터가 살 것이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가까운 사람들에게 천진하고 밝고 웃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주영 감독이 이런 모습을 작품 속에 많이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연기로는 익살스러운 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이전의 캐릭터는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 살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을 떠올렸다. 자신감이 넘쳐서 흔들림 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을 참고했다. 조각 맞춤을 하는 듯했다. 또 인물 자체가 선을 넘는 캐릭터라 모든 감정을 이해하면서 접근하지 않았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연기했다. 그렇게 해야만 유미와 감정이 쌓이기에 순간에만 집중했다.”
-악역 연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착한 역할과 나쁜 역할의 기준이 대중에게 예전만큼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기준이 아닌 것 같다. 선과 악을 신경 썼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긴장감을 줘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게 잘 통했다면 성공이다.” -현주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땠나. “부러웠다. 보는 이들도 자기 기분대로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현주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이번 작품처럼 연기할 때 모든 걸 해소한 적은 없었다. 짜릿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리고 싶은 인물은 아니다.”
-인간적으로 현주를 이해했던 순간이 있나. “호감과 비호감은 한끗 차이다. 포인트를 잘 건드리면 얄밉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로 이해했다. 처음부터 현주가 귀여웠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지만 누군가에 해를 입히는 인물은 전혀 아니다. 그런 면이 인간적으로 보였다. 직설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혼잣말을 할 때 자조적인 대사를 내뱉는다. 허무하고 허망함을 내비치는 대사를 할 때 매력적이었다. 특히 딸에 대한 모성애가 드러났을 때 현주도 결국 평범한 인간이더라. 그런 장면들이 이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수지와 호흡은 어땠는지. “함께한 장면에서 수지는 거의 대사가 없었고 내가 대화와 상황을 주도했다. 현주의 연기를 받는 안나의 리액션이 중요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수지에게서 매번 다른 리액션을 얻고자 혼자 아주 바빴다. 수지와 교감하는 장면은 없지만 호흡이 잘 맞아서 작품이 잘 나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익숙한 모습에서 비켜져 나가는 면을 보면 짜릿한 기분이다. 수지가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한 것이 좋은 시도였다 여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해지는 배우다.”
-OTT 작품을 고르는 혜안이 있는 듯 하다. “매체에 따른 선택 해본 적이 없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때마다 다르다. 작품 속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가 어떤 포지션을 가지는지 생각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지를 많이 생각한다. 작품의 큰 그림을 보는 지휘자인 연출자를 믿는 편이다. 연출자의 눈을 믿고 몸을 던진다.” -초반과 후반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조금씩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반에는 땅에 발을 딛지 않는 듯한 해맑고 안하무인으로 표현했다. 일부러 들떠 있는 톤으로 연기했다. 후반부에서는 내적으로 파고드는 상황을 많이 맞닥뜨리기에 무겁게 연기했다.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나이대의 변화를 표현하고자 초반에는 비어있는 듯한 눈으로 연기했고 후반에는 눈에 영혼을 끌고 와 다른 인물로 보이게끔 연기했다.”
-촬영 중 직접 제안한 부분이 있나. “현장에서 애드리브 시도를 많이 했다. 톤을 다양하게 준비해서 테이크마다 다르게 표현했다. 대사에 새로운 움직임을 시도하고 제스처나 표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틈이 보였기에 가능했다. 현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는데 할 수 있는 선에서 애드리브를 많이 이용한 부분이다. 영어 대사도 직접 수정했다.”
-다채로운 메이크업과 의상도 눈에 띄는데.
“사실 단벌 신사다. 맘껏 땀 흘리고 냄새나도 괜찮은 옷을 좋아한다. 현주의 의상은 시각적 재미가 있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큰 부분이다. 메이크업, 스타일링도 재미있게 했다. 스타일링을 마치면 태도부터 달라지도록 연기에도 힘을 줬다. 감독, 스타일리스트들과 유미와 대조되는 옷의 색감이나 질감에 관해 섬세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작품 촬영 이후 여운을 길게 느끼는 편인가. “빨리 정리를 하는 편이다. 작품은 세상으로 나와 시청자를 마주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안나’의 여운은 이제야 정리를 하고 있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스스로 어땠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은 소중하다. 캐릭터를 보내는 나만의 절차 중 하나다.” -본인 연기 어떻게 평가하나. “스스로 박한 사람이다. 출연작을 잘 못 본다. 모두에게 잊혔을 때 다시 보는 스타일이다. 주변에 예리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많고 무조건적인 칭찬을 하는 지인이 거의 없다. 평가에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부지런히 좋은 작품들을 운명적으로 만나고 싶다. 블랙 코미디 장르를 좋아해서 코미디도 하고 싶고 진지한 멜로도 하고 싶다. 변주를 주어가며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 촬영이 정해진 작품은 ‘파친코’ 시즌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