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윤(31·KT 위즈)의 휘문고 재학 시절 포지션은 '포수'였다. 2008년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주전 포수로 허경민(두산 베어스) 안치홍(롯데 자이언츠) 등과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격이 약한 탓에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미국이었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과 15만 달러(1억9000만원)에 계약했다.
김재윤의 미국 메이저리그(MLB) 도전은 일찍 끝났다. 더블A도 밟아보지 못하고 진출 4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접었다. 2012년을 끝으로 귀국, 곧바로 육군 1군사령부 의장대에서 병역 의무를 마쳤다. 그리고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직후엔 조범현 당시 KT 감독의 권유로 포지션을 투수로 전환,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포수 출신 조 감독은 "캐처(포수)를 해서 그런지 타자와의 수 싸움에 강하다. 볼카운트를 어떻게 해야 유리할지 알고 있는 선수"라고 했다.
김재윤은 KBO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다. 26일까지 시즌 20세이브를 기록, 고우석(LG 트윈스·27세이브) 정해영(KIA 타이거즈·23세이브)에 이어 세이브 3위다. 지난 24일에는 '3년 연속 20세이브'를 달성했다. 그는 "꾸준히 성적을 만들어냈다는 거에 자부심도 느끼고 기분도 좋다"며 "팀이 많이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성적이 올라간 것 같다. 포수들도 워낙 리드를 잘해주는데 그걸 믿고 정확하게 던지려고 한다"고 몸을 낮췄다.
수년째 KT 뒷문을 책임지고 있는 그지만 유독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다. 지난해에는 오승환(삼성 라이온즈)과 고우석에 밀려 도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최종 엔트리 발표일 기준 리그 세이브 3위였지만 출전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절치부심한 김재윤은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노린다. WBC는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달리 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국제 대회여서 현역 빅리거들이 총출동한다. 최정상급 선수들과 자웅을 겨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대부분의 선수가 뛰고 싶어한다. 김재윤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회가 되면 던져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WBC는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본선 1라운드를 비롯해 8강까지 일정을 일본 도쿄에서 소화한다. 만약 4강에 진출하면 무대를 옮겨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경기를 갖는다. 론디포파크는 현재 MLB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의 홈구장으로 과거 말린스 파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김재윤이 국가대표로 론디포파크를 밟는다면 마이너리그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룰 수 있게 된다. 김재윤은 "당연히 욕심난다. 국가대표(태극마크)라는 걸 한번 달아보고 싶다"며 "(빅리그 구장을) 가서 구경만 해봤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포수로 빅리그 무대에 도전했던 그가 10여년 뒤 투수로 빅리그 구장 마운드에 오른다면 감회가 새로울 수 있다.
WBC 사령탑은 이강철 KT 감독이다. 누구보다 김재윤을 잘 알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만큼 태극마크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수 있다. 김재윤은 "뽑힐 수 있게 최대한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끝내는 게 첫 번째 같다. 가고 싶은 욕심은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