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가 생활체육과 엘리트스포츠가 합쳐진 ‘통합체육회’가 된 지 6년이 지났다. 그 기간 내내 대한체육회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 이기흥(67) 회장이다.
대한체육회 회장실에서 만난 이기흥 회장은 밀려드는 일정에 매우 바빴다. 인터뷰 직후 갑자기 생긴 미팅을 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체육회장을 6년째 해 보니까 이 자리는 사업하는 사람이 하면 안 된다. 전임으로 체육회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이거 해보니까 진짜 3D 업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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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의 당선자, 그리고 6년
이기흥 회장은 지난 2016년 10월 통합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쟁쟁한 스포츠인 출신 후보들을 꺾고 선출됐다. 그리고 2021년 재선에 성공했다.
2016년 이기흥 회장의 당선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직전에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이기흥 회장은 직을 내려놓으면서 수영계의 반대 인사들과 갈등이 심했다. 이기흥 회장에 대한 규탄 시위가 이어졌고 관리단체의 임원은 대한체육회장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새 규정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견제가 거셌다. 이기흥 회장은 후보자 자격 존재 확인 가처분 신청 끝에 후보 등록을 했다.
이기흥 회장은 그처럼 각종 잡음 끝에 투표인단 총투표수 829표 가운데 32.9%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당시 단호한 어조로 공약을 내걸고, 체육 현실에 대해 해박하게 연설한 게 지지를 얻은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대한체육회장을 하려는 욕심이 있었다기보다도 반대 세력이 나를 못 하게 막아서니까 오기가 생겨 첫 선거에 나갔던 것”이라며 웃었다.
이기흥 회장은 당선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강성’ 이미지가 강했다. 가끔은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4년 임기를 채우고 2021년 1월 열린 체육회장 선거에서 46%가 조금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재선됐다. 확실한 지지기반이 생겼음을 방증하는 결과였다.
이기흥 회장의 외적인 이미지는 바뀐 게 없다. 여전히 강성 이미지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엘리트 스포츠인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리고 재임 기간 동안 체육계에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현안을 해결해왔다. 밖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다소 거칠지라도 내부적으로 대한체육회 임직원들의 신뢰, 스포츠인들의 믿음을 얻는 데에는 상당 부분 성공했다.
이기흥 회장은 이처럼 우려의 목소리에도 긴 시간 회장직을 소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선거는 귀신이라니까”라고 농담하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직분에 맞게 사심 없이 하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 권력에 동조하지 않고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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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정상화’가 중요하다”
이기흥 회장은 자신이 회장직을 맡기 전까지 대한체육회의 현안이 지나치게 문화체육관광부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회장이 된 후에도 이런 기조가 바뀌지 않아 문체부와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6년을 해보니 내가 직접 챙기지 않고 편하게 흘러가게 두면 예산부터 제도까지 모두 문체부 원하는 대로만 간다. 그럼 체육계가 발전이 안 된다. 대척점에서 맞서야 하는 부분도 많더라”고 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된 통합체육회가 출범할 때부터 문체부의 일방적인 행정 절차에 대한 체육계의 불만이 쌓였다. 이게 오히려 이기흥 회장의 지지 기반이 됐다. 그리고 이기흥 회장이 당선 후에도 꾸준하게 문체부에 맞서 체육계의 목소리를 내는 점이 실무자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기흥 회장은 “문체부와 싸울 문제가 아니라 국회나 기재부(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6월 박춘섭 전 조달청장이 대한체육회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임됐다. 2연속 기재부 출신 인사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된 것이다. 전임이던 조용만 전 총장은 문체부 2차관으로 발탁됐다.
중요한 자리에 연이어 인재를 끌어와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사실. 이기흥 회장은 자신 있게 “내가 회장을 하면서 문체부에서 끌어오는 예산이 늘어났다”고 했다.
이기흥 회장은 그동안 행정력을 집중했던 부분으로 학교체육 정상화, 체육인 연수원 건립을 꼽았다. 그는 “내가 수영연맹 회장도 해봤지만, 박태환이나 황선우가 등장하는 것을 보라. 한국인들은 자질이 뛰어나다. 스포츠에서 자질이 뛰어난 학생은 적극적으로 밀어줄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하는데, 모든 학생을 억지로 수업일수 채우고 공부하게 해서 되겠나”라고 했다.
학교체육 문제는 행정적으로 문체부, 교육부 등이 얽혀 있는 복잡한 타래를 풀어야 하는 사안이다. 이기흥 회장은 “그래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체육업무가 많은 부처에서 나눠서 처리되고 있었는데, 국가스포츠정책위를 통해 논의하고 보완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에 기존 공무원들 외에도 민간인이 위원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을 현 정부에도 강력하게 건의해 추진 중이다.
이기흥 회장은 선수들의 윤리 교육과 인성 교육을 특히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남 장흥, 강원도 평창에 체육인 연수원을 건립 중이다. 그는 “그동안 호텔 빌려서 워크숍 형식으로 중구난방 진행했던 선수나 지도자 교육이 오히려 예산 낭비다. 제대로 된 연수원에서 윤리 교육은 물론이고 은퇴 후 직업, 진로 교육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맡고 있는 이기흥 회장은 스포츠 외교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말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그는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지 않나”라며 “적극적으로 스킨십하고 소통하면 통하는 게 분명히 있다. 회장직을 맡은 이후 2024년 평창 동계유스올림픽을 러시아 소치와 경쟁 끝에 유치했고, 10월 서울에서 ANOC(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회) 총회를 개최한다. 지난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도 판정 문제가 제기된 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심판 문제를 해결해갔다. 스포츠 외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기흥 회장의 임기는 2025년 2월까지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스포츠의 정상화’를 강조했다.
이기흥 회장은 “기본적으로 학교체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한국에서 신생아가 연간 30만명 정도 태어나는데, 중국은 탁구 선수만 30만 명이다. 전 국민이 운동을 생활화하고, 그중 자질 있는 사람은 확실하게 밀어주는 게 맞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활체육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연간 의료비가 평균 40만원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 체육은 엘리트만 하는 게 아닌데 학생 운동부를 인권 탄압하는 나쁜 집단으로 만들어 놨다. 그걸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