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 그리고 ‘우영우’. 배우 박은빈의 필모그래피에 기억하고 기록할만한 이야기가 추가됐다.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으로 남들과 다른 엉뚱한 신입 변호사 우영우 역을 맡아 대중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박은빈은 캐릭터의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안방극장을 ‘우영우 앓이’에 푹 빠지게 했다. 고시 공부를 하듯 연기를 준비했다는 노력과 진정성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특히 박은빈의 노력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드러났다. 표정과 몸짓, 말투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며 극에 디테일을 더했다. 작품에 혼신을 다했다고 털어놓는 박은빈은 “다시 돌아가라면 안 돌아가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우영우’ 신드롬을 예상했나. “지금도 여전히 얼떨떨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관찰자 입장으로 관망하게 된다. 대본을 봤을 때부터 좋은 작품이 되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해내기 어려운 역이겠다 싶어 두려웠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돼서 다행이다.”
-출연을 고사 했다고 들었는데. “좋은 작품을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영우 캐릭터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이 역할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안 잡히더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작가, 감독이 나를 생각해주시고 믿어주는 힘이 컸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한 게 컸다. 믿음에 보답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은 모험적인 마음도 있었던 듯.” -캐릭터 구축에 고민이 많았을 텐데. “장애 증상을 구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면 방어적으로 연기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인물이 가진 잠재력, 가능성을 간과하게 될까 봐 캐릭터에 있어서 다채롭게 접근해보자는 게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이었다. 특히 영우의 이상하면서도 이상하지 않은 부분들을 어느 정도로 표현할 것인가가 심사숙고한 부분이었다.”
-매회 다른 에피소드로 진행되는데. “매회 새로운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 다음 회차를 보게 할 것인가가 내 몫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인물은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반면 영우는 큰 줄기로 계속 함께 가야 한다. 영우에게 귀 기울이게 하고 용기를 주고 응원하고 싶게 시청자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수라고 느꼈다. 처음엔 눈도 안 마주치고 연기하는 게 어려웠는데 나중에는 눈 안 마주치고 얘기하는 게 더 편하더라. 영우와 함께 해준 선배님들도 당혹스러웠겠지만 다들 연기를 잘해 좋았다.”
-기억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뽑자면. “3회가 좋다. 영우가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가 아니라고 자각하고 변호사 자리를 내려놓는 시점이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 부분에서 영우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걸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당탕탕’ 우영우 별명은 어땠나. “좋아한다. ‘우당탕탕’ 한다는 것은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우당탕탕’ 소란을 일으켜서라도 현 상황을 정복시키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사량이 엄청났는데. “대사를 못 외우는 편은 아닌데 매일같이 대사가 많았다. 시간을 갖고 차분히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속사포로 내뱉어야 했다. 외우는 것도 습관이라 잘 외워지긴 했다. 대신 내성을 들이는 데 시간이 들었다. 법조문이 어렵고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아서 고시 공부한다고 생각했다. A4용지에 써서 원하는 구절대로 통으로 외웠다.”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면. “‘저는 흰고래 무리들 사이에 속한 외뿔고래와도 같습니다’. 16부 최종회에서 다룬 외뿔고래에 관한 내용이 ‘우영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대본을 받은 순간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영우가 16부 동안 성장해야 했구나’ 하고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엄마 태수미(진경 분)와의 감정신과 법정신, 또 한바다 회의실에서 태수미를 설득해보겠다고 나서는 것도 영우에게는 의미 있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일어서는 것 자체가 영우가 걸어온 길이자 용감한 모습이다. 인간 박은빈이 배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 만족하나.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래서 종영 소감을 하면서도 오랜만에 눈물을 쏟았다. 행복하기도 했지만 너무 좋은 분들과 힘을 합쳐서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나에게도 성실함을 줬다. 내부적, 외부적으로 피로도 쌓이고 끝까지 잘 해내자고 악전고투 했다.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라면 안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만족도와 비례하지 않을지라도 최선을 다한 만큼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싶지 않다.” -영우의 패션도 화제가 됐는데. “대본에 자세히 쓰여 있었다. 몸에 까끌까끌하지 않는 소재를 신경 썼고 편리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펑퍼짐한 의상을 입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바지보다는 치마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회차당 영우가 옷을 많이 갈아입더라. 100벌 이상은 입은 듯했다. 헤어는 작가님과 감독님, 나까지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서 단발로 결정했다. ‘연모’ 끝내고 2주 정도 영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머리도 잘랐다.”
- 회전문도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 “16회에서 회전문을 혼자 통과하는 영우를 보여준다. 영우의 앞에 놓인 수많은 회전하는 관문들이라고 생각했다. 회전문, 고래 각각 메타포로 작용하는 게 있다. 영우가 혼자서 시도해보는데 최수연(하윤경 분)이 도와주고 이준호(강태오 분)가 도와준다. 영우의 시도 자체가 도움 없이 자기만의 힘으로 현실을 타파해보려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전문은 의미 있는 매개라고 생각한다.”
-패러디가 되기도 했는데. “비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 믿고 싶다. 개인적으로 영우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신중히 고민하고 가볍지 않게 다가갔다. 영우는 ‘우영우’ 세계관 안에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조심스러운 의견이다. 좀 더 간곡하게 말씀드리면 ‘우영우’를 사랑해주는 건 너무 감사하다. 그러나 외형을 따라 하고 말투를 따라 한다는 등의 패러디는 의도와는 달리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문제다.”
-시즌2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식으로 제안받은 바는 없다. 사랑을 받은 만큼 기대치가 높아질 텐데. 그 이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확언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웃음).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뿌듯함으로 끝난 영우의 모습이 그대로 사진 찍히듯이 남아서 보물상자에 넣어주셨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했다. 정말 뿌듯하게 보내주고 싶었다. 그 보물상자를 다시 열어보라고 한다면 처음 영우를 마주하기로 결심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