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의 야구는 곧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커튼이 언제 어떻게 닫힐지는 알 수 없다. 그걸 바꿀 능력이 이대호에겐 있다.
이대호는 20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3번·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해 9회 1사에서 역전 그랜드 슬램을 쏘아 올렸다. 개인 커리어 12호 만루포. 경기 분위기는 이대호의 한 방으로 순식간에 뒤집어졌고, 구장은 롯데 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홈런을 치기 전부터 이대호는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경기 전 대전구장 고별 시리즈를 치르는 이대호를 위해 은퇴 투어 행사가 열렸다. 선수 시절 롯데 선배로 함께했던 조성환 수비코치를 비롯해 한화 선수단 44명의 친필 메시지가 적힌 메시지북 등이 한화 구단의 선물로 그에게 전달됐다.
한화 선수단이 남긴 메시지는 이대호가 쌓아온 드라마 같은 야구 인생이 녹아 있었다. 조성환 코치는 "대기 타석에서 '긴장하지 마이소'라고 외치던 대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라며 "항상 팀의 중심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이대호라는 대단한 선수와 한 팀에서 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하고 영광스러웠다"고 전했다. 경남고 후배인 노시환은 "선배님과 함께 그라운드에 설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선배님은 제 꿈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후배들의 꿈이 되겠습니다"라며 존경과 함께 당찬 포부도 전했다.
이대호는 경기의 오프닝뿐 아니라 엔딩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영화 같은 그랜드 슬램"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이벤트(은퇴 투어)가 선수뿐 아니라 팬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대호의 역전 만루포는 대전을 찾은 롯데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됐고,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게 됐다. 축하와 선물을 받은 건 이대호였지만, 팬들에게 더 크고 귀중한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더불어 이대호는 팬들에게 보물이 된 홈런 장면에 격렬한 배트 플립이라는 ‘쇼’까지 펼쳤다. 이대호는 “던지고 방망이가 머리에 맞을까 봐 열심히 뛰었다. 평일 경기인데도 롯데 팬들이 너무 많이 와주셨다. 저를 보기 위해 이렇게 와주셨는데 (홈런과 승리를) 선물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세게 던진 것 같다"며 "원래 그런 행동은 잘 하지 않지만, 팬들에 대한 보답이자 선물이었다”고 전했다.
단순히 한 경기의 엔딩만 장식한 게 아니다. 2022시즌 롯데와 이대호의 엔딩 역시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날 역전승을 거뒀지만, 롯데는 여전히 8위다. 하지만 5위 KIA 타이거즈와의 승차가 단 3경기에 불과하다. KIA가 최근 8연패에 빠지면서 5위 싸움이 혼전으로 바뀐 덕분이다.
롯데의 잔여 경기는 10경기뿐이다. 하지만 이대호와 선수단이 몇 번의 '드라마'를 더 쓸 수 있다면, 이대호의 마지막 경기는 사직구장 최종전이 아닐 수도 있다.
이대호는 “난 (가을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후배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 선수의 마음가짐”이라며 "후배들에게 한 경기 한 경기, 한 타석 한 타석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팀들보다 롯데가 많이 이겨야 하는 상황이니 더 집중하고, 남은 경기에서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 짓자고 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