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더러운 곳에서 오래 견딜 수 있냐”고 묻는 말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건 자신 있다”고 답한다. 어떤 유혹,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옳다고 믿는 일은 불도저로 밀어붙여 결국 해낸다. 지난 9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오인경을 완성한 남지현이다.
어느덧 데뷔 18년 차 배우인 남지현은 ‘작은 아씨들’에서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기자 오인경으로 활약하며 굵직한 사건의 해결에 앞장섰다. 오인경은 극 중 비리로 가득한 정란회의 실체를 누구보다 빠르게 추적하며 오직 뉴스로 진짜 정의를 드러내는 곧은 인물. 남지현은 결의로 반짝이는 인경을 다채롭게 그려내며 주말 안방극장에 때로는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긴장감을 때로는 감동을 선물했다.
드라마 종영 기념 인터뷰에서 만난 남지현은 먼저 “다사다난했던 자매의 삶을 보러 와줘서 고맙다”고 시청자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인경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비슷하다며 “‘느리지만 확실히 일하는 타입’이라는 대사가 제일 마음에 든다. 결국 굳은 의지로 재상(엄기준 분)을 이기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통쾌하게 웃었다. -종영한 소감은. “12회까지 쫓아오면서 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봐줘서 고맙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시청자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가족들도 그렇고 유난히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뿌듯했다. 직장인 친구들도 연락이 왔다.”
-해외 반응도 좋은데. “주변에서 말해줘서 알았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는데 독일 넷플릭스 기대작에 올라가 있다는 걸 캡처해 보냈다. 신기했다. 아는 지인도 ‘작은 아씨들’이 세계 넷플릭스 순위에 오른 걸 축하해줬다. 10위 안에 들어가 있다고 알려줘서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보고 있구나’ 알게 됐다.” -작품 촬영 전후 달라진 점이 있나. “인경 캐릭터가 전에 맡은 역할과 결이 다르다. 이전에는 모두의 응원과 관심 사랑을 받는 인물을 맡았다면 인경이는 그렇지 않다. 공개되면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경 캐릭터를 향한 호불호 반응이 극명히 갈리고 있는데. “세 자매 모두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 예상했다. ‘작은 아씨들’은 6회까지 빌드업이 계속된다. 7, 8회에 드디어 인주(김고은 분)가 싱가포르로 가고 상아(엄지원 분)가 꼭대기에 있는 빌런으로 밝혀지면서 상황이 풀어 헤쳐진다. 호불호 반응에 실망하고 속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됐던 건 ‘후반부엔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시청자가 그것마저도 못 받아들이면 어떡하지’와 같은 것이었다.” -방송 기자 역할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리포팅 장면이 몇 번 나오지 않는데 준비를 많이 했다. 실제 사회부 기자인 자문 기자가 따로 있어서 3개월가량 리포팅 수업을 받았다. 방송기자만의 발성이 따로 있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녹음 파일을 자문 기자에게 전송해서 피드백을 받아 준비했다. 자문 기자가 촬영 현장에도 직접 나와서 마이크 쥐는 법, 카메라 앞 자세, 어미를 빨리 말하면 좋다는 등 자세하게 도움을 줬다.”
-극 중 인경은 방송 전 술을 마시곤 하는데 실제 남지현의 촬영 전 습관은 무엇인가. “촬영 시작 전 특별히 하는 건 없다. 신경 쓴 부분은 정보를 전달하는 대사다. 인경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실마리를 먼저 쫓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리액션보다는 추측하고 예측하는 행동과 대사가 많다. 상황을 어떻게 잘 전달할까만 고민했다.”
-김고은, 박지후와 자매 연기를 함께한 소감은. “다들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라 찍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모여있는 신이 많이 없어 아쉬웠다. 엄마가 돈을 가지고 가는 바람에 세 자매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인경은 인주, 인혜(박지후 분)를 따로 만난다. 워낙 잘 맞아서 셋이 많이 찍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세 자매 단톡방도 있는데 ‘이 사진 올려도 될까?’와 같은 대화가 오간다.”
-세 자매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인주, 인경이 좀 더 현실 자매이고 중요한 순간에 서로가 최우선인 관계다. 인혜는 조금 다르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난다. 거의 자식이다. 부모가 책임감 넘치지 않았기에 두 언니가 막내에게 가난의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관계성이 이해가 잘 됐다. 셋 다 가족을 너무 사랑한다. 세 자매가 위기 상황에서 가족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인경이 재상과 가장 많이 부딪히는데. “무섭다기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재상과 사람과 싸우려고 맞붙는 것보다 서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 입장 차이 때문에 논리로 싸우는 장면이 많았다. 실제로 엄기준 선배는 박재상과 비슷한 점이 털끝만큼도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어디였나. “10회 속 인경이 재상을 이기는 장면이다. 복도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가 가장 좋았다. 재상이랑 인경이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신에서는 인경이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해당 회차에서는 완전히 뒤바뀐다. 둘의 위치를 바꾸어 놓은 장면이라 좋아한다. ‘느리지만 확실히 일하는 타입이다’는 좋아하는 대사도 나온다.”
-푸른 난초는 실제 꽃이었나. “실제 난초까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푸른 색깔을 손수 칠한 것이다. 푸른색이 화면만큼 선명하게 나왔다. 실제로 보면 예뻤다. 현장에서도 소중하게 다뤘고 향기는 나지 않았다. 정성의 향기는 났다.”
-700억이 실제로 똑같이 주어진다면 남지현은 어떻게 할 것 같나. “어떻게 그 돈이 생겼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원하는 걸 해도 남을만한 돈이다. 규모가 체감이 안 된다. 어떻게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시간이 길지 않을까 싶다. 집을 사야겠다는 인경의 소망은 내 꿈과 비슷하다. 실제로 현실적인 부분밖에 생각을 못 하는 편이다.” -강훈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강훈이 종호에 잘 어울렸다. 종호는 어려운 캐릭터다. 표현은 거침없이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 다정하지만 느끼하지 않아야 하는, 곁에 계속 있어야 하는 존재다. 처음 미팅할 때 대본을 같이 읽으며 좋은 느낌이 났다.”
-종호에 대한 인경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인경은 돈에 비협조적인 인물이다. 돈의 중요성은 알지만 지지 않겠다 결심한다. 종호는 상황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캐릭터다. 종호에 대한 열등감이 있지만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이다. 다만 종호와 함께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마음이 변한다. 종호가 인경이가 듣고 싶은 말은 다 한다. 그때부터 흔들린다.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인경이에게 평화와 같은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다.”
-오인경과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 되나. “인경 자체가 캐릭터가 뚜렷하고 대본을 보면 현실에 살아있을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나랑 비슷했다. 방송이 나가고 대학교 친구가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연락을 하면서 ‘인경이 그냥 너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이 나였냐고 물어보니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화까지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는 게 다큐멘터리같이 너’라고 했다. 놀랬다.”
-인경을 제외했을 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누구인가. “매력적인 캐릭터는 많다. 한번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도일(위하준 분)이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헷갈리게 하는 인물도 해보고 싶다.” -반대로 이해가 안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작품 통틀어 없었다. 우리 드라마 캐릭터의 특징은 모두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악역은 도전한 적이 없는데. “악역도 해보고 싶다.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을 맡던 로맨스든 스릴러든 다 하고 싶다. 부담되고 망설여지는 건 없다. 아직 악역 섭외가 안 들어왔지만 이번에 인경을 보여줬으니 오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나보니 많은 작품을 했다. 거의 1년에 하나씩 했다. 대학 졸업 전에는 학업과 일을 병행해서 작품을 많이 했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쌓였다. 2년 전에 졸업했는데 처음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주어졌다. 에너지도 넘치고 호기심이 더 많이 일어나면서 의욕도 많아지고 있다.”
-어느덧 데뷔 18년 차 인데 작품을 보는 기준이 따로 있나. “뚜렷하게 없어서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기보다 구체적이지 않은 목표로 움직인다. 역할을 고를 때도 계획보다 현재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걸 고민한다. 장르, 역할에 있어 두렵다고 생각하는 건 없다. 어떤 형식이든 신경 쓰지 않고 대본이 좋으면 한다.” -작은 아씨들이 남지현에게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매일매일이 도전이자 신나는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배우 생활을 하며 이런 촬영 현장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모를 만큼이었다. 앞으로 한 두 번 더 만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이든 최고의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 많을 텐데 어떤 배우로 대중에게 각인되고 싶나. “특별한 누군가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 나를 떠올리며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내가 그냥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공통된 이미지로 각인되기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각인됐으면 한다.”
-팬미팅도 앞두고 있는데. “팬미팅이 벌써 두 번째다. 너무 신난다. 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직접 기획한 컨셉부터 콘텐츠, 영상, 포스터 이미지 등 다 회사에서 반영했다. 사회자 없이 혼자 팬미팅도 진행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하는 것이니 부담도 안 되고 어떻게 더 재미있게 하지라는 생각으로 한다. 열심히 만들고 있다. ”
-시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사다난했던 자매의 삶을 보러 와줘서 고맙다. 후반을 알고 봐서 우리는 덜 힘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시청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결말을 알고 정주행을 다시 하면 새롭게 보이는 장면이 많을 것이다. 여러 번 N차 주행하는 드라마로 남겨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