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46)이 은퇴 5년 만에 지도자 길에 들어섰다. 선수 시절보다 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두산 베어스 구단은 14일 오전 11대 사령탑으로 이승엽 KBO 총재특보를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3년, 총액은 18억원(계약금 3억원·연봉 5억원)이다. 역대 신임 감독 최고 대우다. 이 신임 감독은 "선수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얻은 경험과 KBO 기술위원과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보고 배운 점들을 더해 선수단을 하나로 모을 것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드리는 야구를 펼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두산은 올 시즌 60승 2무 82패를 기록하며 9위에 머물렀다. 매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주축 선수들이 이적을 선택한 탓에 조금씩 전력이 약해졌다. 올해는 외국인 선수들마저 부진했다.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창단 최저 순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결국 정규시즌 종료 뒤 8년 동안 동행한 김태형 감독과 결별했다. 구단은 "팀의 장기적인 방향성을 고려했다"고 했다. 새 사령탑 체제로 체질 개선을 도모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슈퍼스타 이승엽을 선택했다.
이승엽 신임 감독은 2017년 은퇴 뒤 야구단을 떠났다. 프로팀에서 지도자를 역임한 경험이 없다는 얘기다.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1군 감독을 맡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코치 이력 없이 바로 지휘봉을 잡는 인사가 많다. 이승엽 감독을 향한 평가도 결과가 나온 뒤에 이뤄지면 된다.
그러나 백지 이력에 대한 편견, 색안경 낀 시선은 이승엽 감독이 지도력을 증명할 때까지 계속 따라붙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감독은 지도자 경험을 충분히 쌓고, 단계를 밟아서 올라야 한다는 정서가 조금 더 많이 깔린 게 사실이다. 신임 감독 최고 대우도 지도자가 아닌 선수 시절 명성 덕분이라는 시선이 많다. 슈퍼스타의 현장 복귀가 흥행 위기에 있는 프로야구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크다.
야구계엔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 어불성설이다. 선임 시점 기준(2019년)으로 통산 다승 3위였던 이강철 감독은 부임 3년 만에 KT 위즈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SSG 랜더스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김원형 감독도 당대의 스타였다. 통합 우승을 이끈 선동열·류중일·김기태 감독도 마찬가지다.
'1루수나 외야수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투수·포수·내야수(유격수나 2루수) 출신 사령탑이 상대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지만, 검증된 얘기도 아니다. 실제로 야수 출신 중에서 마운드 운영을 잘하는 감독도 있다.
성적이 안 좋으면 그저 이런 속설들이 언급되기 시작한다. 갖다 붙여 비난하기 좋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1루수 출신 스타 플레이어였다. 해태 타이거즈,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등 모든 왕조가 쇠퇴기를 겪었고, 두산도 그 시기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적 기대치는 높다. 더구나 전임 김태형 감독은 첫 시즌(2015)부터 팀을 한국시리즈(KS) 우승으로 이끌었다. 7년(2015~2021시즌) 연속 KS 진출이라는 최초 기록을 이끌기도 했다.
새 사령탑 체제에서 성적이 저조하면, 전임 감독 시절과 비교하는 팬도 많을 것이다. 이승엽 감독은 편견 속에서 어수선한 팀을 이끌고 현실과 싸워야 한다. 타석에 설 때마다 설렘을 줬던 '국민 타자'는 이제 선수 시절보다 냉정한 시선과 평가를 받는 자리에 있다.
이승엽 감독은 자신을 향한 시선과 의구심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선임 직후 인터뷰에서 "사실 난 리스크가 많은 신임 감독"이라고 자평하며 "못하면 비난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고 자리에 올라선 스포츠인만의 특별하고 비범한 기질이 지도자로도 발휘될 것이다. 2023시즌 '감독 이승엽'의 행보가 꾸준히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