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34·KIA 타이거즈)은 지난해까지 출전한 포스트시즌(PS) 여덟 경기(28이닝)에서 평균자책점 1.61을 기록하며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2017년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KS)에서는 MVP(최우수선수)도 수상했다. 2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뒀고,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선 5차전에선 9회 말 등판해 세이브까지 기록, 소속팀의 통합 우승 기쁨을 마운드 위에서 만끽했다. 그는 그해 KBO 시상식에서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하며 2017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KIA팬 사이에서만 불리던 '대투수'라는 별명도 널리 퍼졌다.
KIA는 양현종이 입단한 2007년 이후 다섯 차례 PS에 올랐고, 양현종은 모두 한 경기 이상 등판하며 개근했다. 2016·2018년 치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선 각각 2차전과 1차전에 등판했다.
그런 양현종이 올해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KIA는 정규시즌 5위에 오르며 4위 KT 위즈와 치르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김종국 KIA 감독은 13일 1차전에서 외국인 투수 션 놀린을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투수진 총력전을 펼쳐 1차전을 잡고, 양현종을 2차전 선발로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KIA는 1차전에서 KT에 2-6으로 완패했고, 양현종이 등판할 기회도 사라졌다.
놀린은 9~10월 등판한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99를 기록하며 매우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1선발로 낙점된 이유다. 양현종은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짧은 슬럼프가 있었지만, 5위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9월 22일 NC 다이노스전, 10월 1일 SSG 랜더스전에서 모두 5이닝 이상 막으며 3점 이상 내주지 않았다.
양현종은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13일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을 앞두고 만난 그는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그저 간절히 팀 승리를 기원했다. "일주일 머물 짐을 싸 왔다"며 자신이 등판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드러냈다.
1차전 선발은 놀린에게 내줬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마운드 리더 역할에 충실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엔트리에 포함된 KIA 국내 투수 10명 중 PS 등판 경험이 있는 선수는 양현종·임기영·장현식 3명뿐이었는데, 양현종은 PS를 앞두고 긴장한 젊은 투수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나도 선배들한테 '편안하게 던져라', '즐겨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게 말처럼 되는가. 그래도 계속 말 해줘야 한다. 주입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PS가 끝나면 (타자를 상대하며 느끼는) 쫄깃한 감정을 5개월 정도 느낄 수 없게 된다. 후배들한테도 그래서 '후회 없는 투구를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PS 무대에서 투수는 타자들이 주연을 할 수 있도록 무조건 버텨내야 한다. 그런 부분도 강조했다"고 전했다.
양현종을 경기(13일 KT전) 중에도 끊임없이 없이 동료들을 격려했다. 선배 최형우가 장타를 쳤을 땐 아이처럼 기뻐했고, 투수진 후배 이준영이 실점 없이 7회 위기를 넘겼을 땐 가장 먼저 더그아웃으로 마중 나갔다.
KIA는 경험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2-6으로 패했다. 4년 만에 찾아온 KIA의 가을 축제는 짧고 허무했다. 그러나 양현종은 마지막까지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