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MU의 이찬혁은 지난달 17일 발매한 솔로 정규 1집 ‘에러’(ERROR)에서 은유적인 죽음을 겪은 후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수록곡 ‘내 꿈의 성’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견고하고 거대한 성으로 비유하며 본인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이찬혁은 이 욕망을 음악 외적인 퍼포먼스로도 표출했다. 지난달 Mnet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해 객석을 등지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SBS ‘인기가요’에서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삭발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이런 모습은 ‘기행’으로 다가왔지만 이찬혁의 음악과 더불어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된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을 찾자는 메시지는 특히 걸그룹의 노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룹 (여자)아이들과 르세라핌의 신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자)아이들은 다섯 번째 미니앨범 ‘아이 러브’(I love)에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그냥 ‘나’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마땅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겉치레는 벗어 던지고 꾸밈없는 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타이틀곡 ‘누드’(Nxde)는 제목부터 ‘너’를 의미하는 알파벳 ‘u’ 대신 ‘x’를 사용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Z세대를 표현했다.
르세라핌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과 동명의 타이틀곡에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무시 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 등의 가사로 자아실현을 완성했다. 멤버들이 겪었던 일들을 담아내 시련을 마주할수록 오히려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 가요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자아실현이나 꿈,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Z세대 아티스트들 역시 사랑보다는 자신의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대부분 사랑 소재에 한정된 K팝에 지친 팬들은 가수들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곡들에 환호하고 있다. (여자)아이들의 ‘아이 러브’는 초동 판매량 67만8000장을 돌파했으며, 타이틀곡 ‘누드’는 현재까지 국내 음원사이트 차트 최상위권을 굳게 지키고 있다. 르세라핌의 ‘안티프래자일’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4위를 기록하며 역대 K팝 걸그룹 역사상 데뷔 후 가장 짧은 시간 만에 차트인했다.
'남'이 아닌 '나'를 주목하는 K팝계의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또 다른 가요 관계자는 “직접 창작하는 아이돌이 있는 한 이런 경향은 당연히 지속될 것”이라며 “K팝이 비판받는 지점 중 하나가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작품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아찾기가 제작 문화에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