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이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주류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이 방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트롯 열기가 이 정도로 뜨거워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했다. 대한민국에 트롯 전성기를 불러일으킨 TV조선 서바이벌 프로그램 ‘미스트롯’이 첫 방송된 게 2019년 2월 28일이었다. 이후 4년 만에 트롯계는 이전보다 훨씬 크게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업계가 앓고 있던 문제점들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시청률 5.8%로 시작해 10회 만에 최고 시청률 18%로 종영한 ‘미스트롯’은 시즌1에만 그치지 않고 ‘미스터트롯’ ‘미스트롯2’ ‘미스터트롯2’까지 연이어 론칭하며 TV조선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계절마다 흐름이 바뀌는 방송가에서 트롯 열풍이 식지 않는 배경에는 ‘미스트롯’ 시리즈의 영향이 크다.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가요계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송가인의 “가인이어라”부터 임영웅의 “건행”까지 트롯 가수들의 말투와 인사가 유행어처럼 자리잡았고, 트롯 장르의 음악들이 실시간 음원 차트 상위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방송사에선 연일 홈런을 치는 ‘미스트롯’의 모방 방송이 쏟아져 나왔고, 방송 출신 트롯 가수들을 섭외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극적으로 트롯의 대중화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 트롯은 침체기를 겪었다. 2009년 ‘사랑의 밧데리’로 ‘트롯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급부상한 홍진영 이후 신예 스타가 눈에 띄지 않았다. 2000년대에 장윤정, 박상철, 박현빈 등이 이어온 트롯 스타 계보도 홍진영에서 끝나는 듯했다.
트롯 예능의 성공은 소외된 장르였던 트롯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비췄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잠깐의 태풍으로 그칠 줄 알았던 트롯 열풍이 방송과 결합해 롱런 인기를 구가하면서 트롯은 젊은층까지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미스터트롯2’에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출연, ‘대학부 열풍’을 만들어내는 광경은 일견 1990년대 대학리그 농구 열풍까지 떠올리게 한다. 한때 트롯은 젊은 층의 외면을 받는 장르였으나 최근에는 소위 명문대 재학생들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을 하고 있다.
이런 다소 가파른 성장 속에 변화가 필요한 지점도 포착된다. ‘미스트롯’ 등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기존에 유명세는 타지 못해도 트롯이 좋아 행사 위주로 활동하던 무명 가수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장르가 편중되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트롯 가수들과 일을 해온 한 연예 기획사 대표는 “1년에 한 번 있는 기회인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행사 라인업이 (트롯) 방송 출신들로 도배되다 보니 10~20년 차 가수들도 설 자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가수 A씨는 새 기획사를 알아보다 트롯으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트롯 가수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르게 인기를 끌어올리고 행사를 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행사에서도 트롯 가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게 느껴진다”며 “행사 자체가 많이 줄어들어서 심각하게 전향을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오랜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름의 시스템을 구축해온 K팝의 다른 장르들과 달리 트롯계는 지난 몇 년간 단기간에 성장하면서 미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지점도 있다. 때문에 행사나 공연 등의 계약에서 분란이 발생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미스터트롯’ 이후 트롯 가수를 영입했다가 이런저런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미스트롯’ 붐 이후 많은 사람이 트롯 업계에 뛰어들며 판이 커졌는데, 아직은 그 규모에 걸맞게 시스템이 잘 갖춰진 단계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전히 주먹구구식 계약이나 진행 같은 것이 많이 보인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는 웬만하면 트롯판에서 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 트롯 경연 출신 가수들은 종영 직후에 가장 큰 주목을 받기 때문에 ‘반짝 스타’에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화제성이 히트의 중요한 요소인 방송가의 특성상 기획사들이 아티스트를 키우기 위한 장기 투자보다 방송으로 뜨는 벼락스타 만들기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판은 커졌지만 등용 기회는 더욱 좁아지는 아이러니다. 실제로 최근 방송되고 있는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이전 시즌이나 다른 트롯 방송에서 경쟁을 펼치다 재도전한 가수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자칫 트롯 열풍이 방송국 속의 폭풍이 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며 “트렌디한 트롯을 해야 하는데 (방송은) 계속 옛날 방식의 트롯을 구사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트롯이 움츠러들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며 “트롯 방식을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