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키노 베테랑스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연습 경기에서 박병호가 좌중간을 가르는 적시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병호(37·KT 위즈)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제출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50인 관심 명단에서 빠졌다. 9월 중순 주루 중 발목 인대가 파열된 탓이었다. 수술 대신 복귀가 빠른 재활을 선택, 포스트시즌에 돌아왔지만 100% 몸 상태는 아니었다.
WBC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물음표가 찍혀 관심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박병호는 지난 1월 발표한 최종 엔트리(30명)에 포함됐다. 관심 명단에서 제외돼도 최종 엔트리에 승선할 수 있는 대회 규정상 몸 상태를 빠르게 추슬러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WBC 야구 대표팀에서 그의 어깨가 무겁다. 박병호는 대표팀 최고참이다. 최지만(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합류가 불발되면서 대표팀의 유일한 전문 1루수이기도 하다. 오프시즌 팔꿈치 수술을 받은 최지만은 관심 명단에 포함됐지만, 소속팀 피츠버그의 반대로 대회 출전이 무산됐다. 이강철 감독은 최지만의 대체 자원으로 오재일(삼성 라이온즈)을 비롯한 1루수가 아닌 외야수 최지훈(SSG 랜더스)을 발탁했다.
박병호는 "WBC에 (대표로) 뽑혔을 때부터 1루 수비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최지만 선수의 (참가) 확률 가능성이 반반이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돼 있었다"며 "그냥 똑같다. 부담보다 경기에 나가면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할 거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팀 후배 강백호(KT)가 1루수 훈련을 할 때 여러 조언을 건네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이강철 감독이 "병호 덕분에 백호의 1루 수비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정도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박병호(왼쪽부터) 강백호, 고영표, 소형준의 모습. KT 위즈 제공
박병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AG)부터 총 네 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 멤버이고, 2019년 자카르타-팔렘방 AG에선 인천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AG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유독 WBC와는 인연이 없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던 2017년에는 김태균(전 한화 이글스) 이대호(전 롯데 자이언츠) 등에 밀려 최종 엔트리에 승선하지 못했다. 이번이 첫 출전이다.
대회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1986년생인 그에게 이번 WBC는 박병호의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 수 있다. 그는 "(앞서 나갔던) 국제대회에서 (개인)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많은 비난도 들었고, 그럴 때마다 후회가 남았다. 선수들과 똘똘 뭉치고 상대 분석도 잘해서 후회 없이 귀국하는 게 목표"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병호는 2019년 프리미어12에서 4번 타자로 출전해 1할대 타율로 부진한 바 있다.
조금씩 타격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박병호는 지난 17일(한국시간) 열린 NC 다이노스와 첫 연습 경기에선 4번 타자로 3타수 2안타 1타점, 20일 KIA 타이거즈와 연습 경기에서도 5번 타자로 2타수 1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현역 빅리거인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합류하더라도 중심 타선에 고정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의 연습 경기에선 모두 지명 타자로 출전했지만, 1루 수비 비중을 점차 늘릴 계획이다.
박병호는 2020년과 2021년,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으면서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프로야구 안팎에선 "박병호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2022년 홈런왕(35개)에 오르며 반등했다. WBC는 그가 스스로 만든 '유종의 미'를 거둘 좋은 기회다. 박병호는 "일단 발목이 이슈인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 같다.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수비나 타격할 때의 느낌은 전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며 "타선에 상관없이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