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유단(珠道有段). 골프를 치는 데도 급수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만든 사자성어이다. 맨 앞 한자는 독자도 알다시피 구슬 ‘주’자이다. 골프공을 말한다. 거기에 ‘도’자를 달아서 골프를 고상한 기예의 반열에 올려 놓았으니 내가 보기에도 그럴 듯 하다. 물론 내가 순수하게 창작한 것은 아니다. 응용한 것이다. 시인 조지훈 선생이 쓴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에서 힌트를 얻었음을 자백한다. 조지훈 선생은 술을 마시는 데도 급수가 있다고 했다. 골프는 치는 데도 급수가 없을 수가 없다.
골퍼의 급수는 9급부터 9단까지 무려 열 여덟 단계로 나눈다. 뜸들이지 않고 바로 설명을 하겠다.
가장 하수인 9급은 부주(不珠)이다. 골프를 아예 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설명이 필요 없다. 골프채도 잡지도 않는데 어찌 급수를 논할 수 있겠는가?
8급은 외주(畏珠)이다. 두려울 ‘외’자이다. 골프를 치기는 치지만 필드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어쩔 수 없이 골프를 치는 부류이다. 번번히 마음이 상하다 보니 급기야 필드 나가기를 두려워하게 된 골퍼가 여기에 속한다. 점잖은 사람 중에 이 8급 외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안타깝지만 하수를 면하려면 무슨 수라도 써야 하는 지경이다.
7급은 민주(憫珠)이다. 민망할 ‘민’자이다. 골프를 칠 줄 알고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이 잦은 골퍼라면 아직 7급이다. 매번 잔뜩 벼르고 필드에 나가지만 열만 받고 돌아오기 십상이라면 아직은 7급 하수이다.
6급은 은주(隱珠)이다. 숨을 ‘은’자이다. 골프를 제법 잘 치지만 돈이 아까워서 혼자 치는 골퍼를 말한다. 형편이 상당히 넉넉한 데도 주위 사람들에게 후하지 않은 골퍼라면 어깨를 아무리 으쓱거려도 고작해야 6급 하수일 뿐이다.
5급은 상주(商珠)이다. 워낙 쉬운 한자이고 보니 뜻풀이도 필요 없다. 골프를 상당히 잘 치지만 주로 잇속을 위해서 골프를 치는 골퍼이다. 비즈니스 골프라면 대부분이 이 급수이다. 물론 게 중에는 진지한 상수(上手)도 더러 있긴 하다.
4급은 색주(色珠)이다. 혹시나 실수할까 보아 설명을 달지는 못하겠다. 무슨 뜻인지 독자도 짐작할 것이라고 믿는다. 민망한 표현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시절에 쓴 조지훈 선생의 표현을 빌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호기심이 생기는 독자라면 조지훈 선생의 수필 원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골퍼를 상수와 중수(中手) 그리고 하수(下手)로 나눈다면 9급부터 4급까지는 하수라고 하겠다.
3급은 수주(睡珠)이다. 잠 잘 ‘수’자이다. 잠을 자기 위해 골프를 치는 사람이다. 굳이 풀어보면 걱정을 잊기 위해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를 치는 동안이라도 큰 걱정을 잠시 내려놓으려는 골퍼라면 이 축에 든다. 지혜로운 골퍼이다. 슬슬 중수로 치는 수준이라고 하겠다.
2급은 반주(飯珠)이다. 밥상에 놓는 반찬의 그 ‘반’자이다. 밥맛을 돋우려고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건강해 지려고 클럽을 잡는 부류이다. 이 정도 상수라면 이미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1급은 학주(學珠)이다. 배우는 마음으로 골프를 친다는 뜻이니 골프의 진경에 푹 빠진 사람일 터이다. 유단자의 턱 밑에 있는 골퍼이니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경지이다.
이런! 아직 골프의 열여덟 단계 급수 중에 절반을 설명했을 뿐인데 허락한 지면이 다 차고 말았다. 그래도 첫 회를 마치기 전에 뱁새 김용준 프로는 몇 급쯤 되는 지 귀띔은 하고 가야겠다. 독자가 짐작하기에 나는 몇 급쯤 되겠는가? 프로 골퍼이니까 그래도 유단자 축에 들지 않겠냐고?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골프로 돈을 번다. 그렇다면 몇 급일까? 맞다. 독자가 생각한대로이다. 김 프로는 5급 상주(商珠)이다. 5급이라면 하수에 속한다. 이럴 수가! 유단자 편은 다음 회에 알려 주겠다.
▶김용준 KPGA 프로는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사업을 하던 중 골프에 푹 빠지더니 급기야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 독학으로 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했다. 잠시 투어의 문을 두드리다가 이내 낙담하고 KPGA 코리안 투어 심판이 되었다. 판정을 하느라 이따금 TV에 옆 모습이 비치는 것으로 투어에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했다. 한동안 골프 채널 중계를 맡았고 골프 예능에도 출연했다. 지금은 모 대학 골프학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