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코치진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속의 땅이 될 줄 알았던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지가 악천후의 반복으로 대표팀의 정상 훈련을 방해했고, 마지막 날엔 기체 결함으로 대표팀의 귀국 일정까지 꼬아 버리면서 말썽을 일으켰다.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가 화두로 떠올랐다. 따뜻할 줄로만 알았던 애리조나에 때아닌 강추위가 찾아오면서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애를 먹었다. 특히 투수들이 문제였다. 보통 투수들은 온화한 기후에서 단계별로 투구 훈련을 하며 몸을 끌어 올리는데, 강추위가 발목을 잡았다. 기체 결함으로 인한 8시간 버스 이동과 긴 비행시간, 늦어진 귀국 일정도 선수들의 컨디션에 악영향을 미쳤다.
선수들도 걱정이다. 대표팀 주전 포수 양의지(36·두산 베어스)는 “(애리조나에서) 직접 공을 받아봤을 때 좋은 투수들도, 안 좋은 투수들도 있었다. (늦게 합류하는 선수들의) 컨디션이 떨어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며 투수들의 상태를 걱정했다. 투수 원태인(23·삼성 라이온즈) 역시 “솔직히 100%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투수들의 컨디션이 더디게 올라온다”고 고백했다.
정현욱(45) 투수코치도 “애리조나에서 실전을 더 많이 치러야 했는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할 수가 없었다”라면서 “어린 선수들의 페이스가 더디다. 원래 이맘때 공을 던지는 시기가 아니다 보니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희망은 있었다. 숱한 변수 속에서도 베테랑 선수들은 자신의 페이스와 컨디션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정현욱 코치는 “김광현(35·SSG 랜더스)과 양현종(35·KIA 타이거즈), 이용찬(34·NC 다이노스) 등 고참 선수들의 컨디션은 다 좋다. 대표팀 경험이 많아 알아서 자기 페이스대로 준비를 잘해왔다”라며 칭찬했다.
김광현은 2000년대 후반부터, 양현종은 201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아온 베테랑이다. 이용찬도 2010년대 말 국가대표로 국제무대를 누볐다. 시즌 전 열리는 WBC는 물론, 시즌 중 열리는 올림픽·아시안게임, 시즌 후 열리는 프리미어12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변수가 수두룩한 시즌을 여럿 치러왔다. 대회 시기에 맞춰 컨디션과 페이스를 조절하는 노하우가 몸에 녹아 있을 터. 구창모(26·NC 다이노스), 이의리(21·KIA 타이거즈) 등 젊은 선수들도 이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고 이야기해온 바 있다.
‘언제적 광현종(김광현+양현종)이냐’는 말과 세대교체 논란 등 베테랑들의 합류를 달가워하지 않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표팀에서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의 호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예기치 못한 변수 속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후배들의 본보기까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팀 내 베테랑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정현욱 코치도 “어린 선수들 입장에선 경험 많은 선배들이 잘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배울 것이다. (젊은 선수들이 이런 노하우가 쌓인다면) 다음 대회에서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며 베테랑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편 본 대회(9일 호주전)까지 일주일을 남긴 대표팀은 2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합동 훈련을 가졌다. 원태인 등 투수들은 “따뜻한 고척돔에서 훈련하면 컨디션을 빨리 끌어 올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정 코치 역시 "투수들이 컨디션을 100%까지 올린다면 분명히 좋은 투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