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5)는 지난 2019년 출전한 자신의 첫 한국시리즈(KS)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다. 소속팀 키움 히어로즈가 정규시즌 1위 두산 베어스에 4전 전패하며 우승을 내준 것.
이정후는 2019 KS 4경기에서 타율 0.412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지만 4연패를 막지 못했다. 경기 뒤 만난 이정후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며 "이렇게 무기력하게 질 줄 몰랐다. 아쉬움만 남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오늘 느낀 감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감정을 또 느끼지 않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후는 이후 더 성장했다. 2021시즌에는 데뷔 처음으로 타격왕에 올랐고, 2022시즌엔 수위 타자 2연패에 타격 5관왕(타율·타점·장타율·출루율·안타)까지 해냈다. 2022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준플레이오프(PO)부터 치러 KT 위즈와 LG 트윈스를 잡고 KS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정후는 우승 문턱에서 또 고배를 마셨다. 정규시즌 1위 SSG 랜더스에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밀렸다. 리그 최고 타자가 된 이정후지만, 다시 한번 밑(준PO·PO)에서 올라가 KS를 치러 업셋 시리즈를 해내는 게 버겁다는 것을 확인했다.
달라진 점도 있다. 이정후는 2022년 KS가 끝난 뒤에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 숙인 팀 동료들을 독려했다. 이정후도 패배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박병호(KT 위즈)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선배들이 팀을 떠난 상황에서 자신까지 실망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본 것 같다. 이미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성숙했다.
이정후는 2023년 봄, 야구 인생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한국 야구팬의 기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출전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의 참사를 막지 못했다. 한국은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호주에 7-8로 졌고, 숙적 일본엔 4-13으로 대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봤다.
이정후는 잘했다. 한일전에서 메이저리거 투수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안타를 치는 등 4경기에서 타율 0.429(14타수 6안타) 5타점 4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이 흑역사를 썼고, 주축 타자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일본과의 현저한 격차를 확인했다. 이정후는 "솔직히 아직도 충격이다. 야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분하기도 하지만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투수들의 공은 확실히 달랐다.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정후는 2017년 프리미어12,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한일전에 나섰다. 2경기 모두 팀 패전을 막지 못했지만, 프리미어 대회에서 삼진을 당했던 일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올림픽에서 설욕하기도 했다.
하지만 빅리거들까지 포진하며 100% 전력으로 나선 일본의 힘은 그도 처음 겪었다. 콜드패를 간신히 모면할 만큼 당한 것도 처음이다. 이번 패전은 앞선 두 경기와 달랐다.
이정후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켰을 것 같다. 한·일 수준 차이를 인정한 것으로 패배감을 대신 전했다. 수많은 문제점을 확인한 한국야구지만, 얻은 것도 있다. 실패를 경험한 이정후가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원태인·강백호·김혜성 등 한국야구 현재이자 미래의 자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이정후다. 이들과 이번 치욕을 곱씹을 것이다.
2017년 KS에서 눈물을 흘렸던 이정후는 2022년, 같은 무대에선 같은 결과(준우승)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2023시즌 KS 우승을 노리며 말이다. 야구는 계속되고, 더 강한 일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정후는 15일 소속팀(키움) 복귀 뒤 가진 인터뷰에서 "꼭 일본에 설욕한다는 마음보다는 우리의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대표팀) 선수가 부족한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더 성장해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