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던 우려가 현실화할 조짐이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국내 선발 투수들이 정규시즌 첫 등판에서 대부분 부진했다. 현장에선 "예상보다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LG 트윈스전. 이날 경기는 WBC 대표 김윤식(23)과 소형준(22)의 선발 맞대결로 관심이 쏠렸다. 두 선수 모두 KT와 LG를 대표하는 토종 에이스지만 경기 내용이 심각했다. 소형준은 2와 3분의 1이닝 10피안타 9실점. 실점이 모두 자책점이었다. 한 경기 9자책점은 2020년 데뷔 후 개인 한 경기 최다(종전 8자책점·2회) 기록. 3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피안타 10개를 맞은 것도 처음이었다.
김윤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회 앤서니 알포드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김윤식은 2회 세 타자를 연속 내보낸 뒤 무사 만루에서 강판당했다. 1이닝 4피안타(1피홈런) 2사사구 2실점. 뒤이어 등판한 임찬규가 무사 만루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아내지 않았다면 개인 기록이 크게 악화할 뻔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경기 전 김윤식의 한계 투구 수로 70개(실제 39개)를 언급했지만, 불안한 구위 탓에 일찌감치 불펜이 가동됐다. 소형준과 김윤식은 WBC를 마친 뒤 투구 수를 서서히 늘렸다. 하지만 개막전까지 100% 몸 상태를 만들기 어려웠다.
염경엽 감독은 2일 경기 전 "WBC를 다녀온 선수들은 개수(투구 수 늘리기)가 쉽지 않을 거다. (김)광현이 정도, 선발로 던졌던 투수를 빼면 투구 수가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WBC 대표 선수들은 지난달 14일 입국한 뒤 소속팀에 복귀했다. 시범경기에서 2~3번씩 등판하며 투구 수를 늘렸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개막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칫 무리하다 부상으로 이어지면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김윤식과 소형준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날 선발 등판한 구창모(26·NC 다이노스)도 크게 흔들렸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한 구창모는 4와 3분의 1이닝 7피안타(1피홈런) 6실점(6자책점)했다. 구창모가 한 경기 6자책점을 허용한 건 2019년 8월 16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2와 3분의 1이닝 6자책점) 이후 1325일 만이었다. 구창모도 WBC에서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뛰었다. 삼성전 직구 최고 구속은 148㎞/h까지 측정됐으나, 제구가 흔들렸다.
공교롭게도 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의 출발은 산뜻했다. 안우진은 지난해 프로야구 투수 2관왕이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토종 에이스다. 학교폭력 이력 탓에 WBC 출전이 불발, 스프링캠프를 차근차근 소화하며 정규시즌에 맞춰 몸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 1일 한화 이글스와 개막전에서 6이닝 5피안타 12탈삼진 무실점 쾌투를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WBC를 출전하지 않은 롯데 자이언츠 나균안(6과 3분의 2이닝 5피안타 무실점)과 두산 베어스 최원준(7이닝 5피안타 2실점)의 시즌 첫 등판도 안정적이었다. 한 구단 관계자는 "(WBC에 출전한 선발 투수는) 대부분 3선발급이다. 흔들리면 팀이 받는 영향이 크다. (컨디션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구단으로선 난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