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여제' 김연경(34·흥국생명 )의 '대관식'이 열릴까. 그 여부는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된다.
흥국생명은 지난 4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3 도드람 V리그 한국도로공사와의 챔피언 결정전(5전 3승제) 4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1-3(25-22, 21-25, 22-25, 23-25)로 역전패했다.
흥국생명이 1~2차전을 손쉽게 따낼 때만 하더라도 쉽게 우승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적지에서 열린 3~4차전 모두 1세트를 따내고 1-3 역전패했다.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은 6일 인천에서 가려진다. 누가 이기든 우승의 향방은 시즌 최종일에야 가려진다.
김연경은 우승이 간절하다. 2016~17시즌 터키 페네르바체 시절 이후 챔프전 우승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V리그에선 흥국생명 소속이던 2008~09년이 마지막이다. 11년 만에 V리그에 복귀한 2020~21시즌 '흥벤져스(흥국생명+어벤져스)'라 불릴 만큼 역대 최강의 전력을 구축, 절호의 찬스를 잡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폭 논란'에 휘청이면서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이번 시즌에도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현대건설과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인 1월 초, 흥국생명은 갑자기 권순찬 전 감독을 경질했다. 김연경은 큰 충격을 받고 구단 운영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리더의 책임감을 안고 분위기를 수습하며 팀을 이끌었다. 최고참 김해란은 "(김)연경이가 가장 힘들었을 텐데 정말 대단하고, 고맙다"라고 했다. 흥국생명은 결국 정규시즌 1위 역전극을 완성, 챔프전으로 직행했다.
김연경은 1~6라운드 최우수선수(MVP)를 4차례나 수상하며 사실상 정규시즌 MVP까지 예약했다. 챔프전 우승 트로피까지 번쩍 들어올린다면 완벽한 대관식을 완성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 소원이다.
어쩌면 이번 챔프전이 '선수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가 될지 모른다. 김연경은 2월 중순 은퇴설이 나돌자 "맞다. 은퇴 고민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김연경이 선수 생활을 지속하더라도 흥국생명과의 동행은 마지막일 수 있다. 이번 시즌 종료 후 한국 무대에서 처음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그래서 흥국생명에서 '해피 엔딩'을 꿈꾼다.
5차전에 자존심이 걸려 있다. 남녀부를 통틀어 이제껏 V리그 챔프전에서 1~2차전을 승리한 뒤 3~4차전을 패한 경우는 흥국생명이 처음이다. 당연히 리버스 스윕 우승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흥국생명이 5차전마저 내줄 경우 안방에서 한국도로공사의 역대급 대역전 우승 세리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봐야 한다.
정규시즌 공격성공률 1위(45.76%), 득점 전체 5위(669점, 국내 선수 1위)를 기록한 김연경은 여전히 무서운 존재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은 "솔직히 김연경 한 명이 팀(흥국생명)을 단단하게 만들고, (상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볼이든 처리할 능력 갖췄다. 김연경을 견제하다 보면 (흥국생명) 다른 선수들이 편해진다. 김연경에게 (점수를) 주더라도 다른 선수를 막는 방식으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하의 김연경도 이틀 간격으로 치러지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4차전 공격 성공률이 챔프전 시작 후 가장 낮은 34.55%까지 떨어졌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조금씩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다. 김연경은 5차전에 온 힘을 쏟을 각오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은 "찬스를 놓치는 게 아쉽다. 5차전 승리 확률은 50대 50이다. 인천에서 지는 걸 상상하기 싫다"고 말했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은 "흥국생명은 (김연경이라는) 확실한 루트가 있어서 (5차전 승부도) 쉽지 않을 거로 예상한다"면서도 "여자 배구는 변수가 많다. 분위기에 따라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1~2차전 패배 시 우승 사례가 없는) 0% 확률을 깨고 싶다. 5차전이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