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장’ 브루스 음와페 잠비아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혀를 내둘렀다. 한국의 장신 공격수 박은선(37·서울시청)의 강점을 알고도 당했다고 털어놨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대표팀은 잠비아와 2연전에서 10득점 2실점을 기록, 2연승을 거뒀다. 각 경기에서 5골씩을 몰아쳤는데, 그 중심에 박은선이 있었다. 벨 감독의 부름을 받은 박은선은 ‘조커’ 그 이상의 가치를 증명했다. 애초 벨 감독은 박은선을 후반 교체 카드로 염두에 뒀지만, 상대에 따라 선발 투입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박은선은 지난 7일 잠비아와 1차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골망을 갈랐다. 9년 만에 맛본 A매치 골이었다. 예열을 마친 박은선은 지난 11일 열린 2차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박라탄(박은선+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이라는 별명답게 우월한 신체 조건을 앞세워 잠비아를 압도했다.
1m81㎝, 79㎏의 당당한 체구를 지닌 그는 상대와 공중전에서 거듭 우위를 점했다. 머리로 이금민(브라이턴)의 득점을 도왔고, 경기 막판 코너킥 상황에서는 타점 높은 헤더로 ‘한 방’을 뽐냈다.
단순히 경기가 밀릴 때 투입되는 ‘헤더 용’이 아니라는 것도 입증했다. 박은선은 전반 35분 첫 골을 넣을 때, 순간적인 라인 브레이킹으로 수비 라인을 완전히 허문 뒤 침착하게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문을 열었다. 그저 높이에만 강점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활용도가 있음을 과시했다.
벨 감독은 잠비아와 2연전을 마친 후 “지난해 6월 박은선을 캐나다 원정 평가전에 처음 데려갔다. 그때 박은선에게 ‘네게 원하는 것은 15분, 20분 정도다’고 말했다. 이후 박은선이 노력하고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온실 속 화초처럼 아끼고 있다가 월드컵에 데려가고 싶다”고 극찬했다.
박은선은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 월드컵을 끝으로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다. 지난해 벨호에 차출돼 7년 만에 A매치를 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은선은 경기 막판 ‘15분’ 정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차츰 벨호에 녹아들었고, 37세의 나이에도 기량을 끌어올려 입지를 다졌다. 벨 감독 입장에서는 월드컵을 석 달 앞둔 시점에 ‘선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이 늘어난 셈이다.
늘 벨 감독이 강조하는 ‘고강도 훈련’을 발전 요인으로 꼽은 박은선은 “월드컵에 가서 한 번 골을 넣어 보고 싶다는 욕심은 갖고 있는데, 매번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며 “이번 월드컵에 가게 되면 다른 것보다 득점하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37세인 박은선에게는 2023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이 ‘라스트 댄스’다. 박은선은 앞서 2003 미국 대회에 나섰지만, 당시 17세였던 터라 기량이 무르익지 않았다. 한국이 16강 무대를 밟은 2015 캐나다 대회에서는 부상 탓에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의지를 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