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차량 호출 1위 카카오모빌리티가 서비스 전반에 영향을 줄 규제 지뢰밭 때문에 조만간 발목이 잡힐 전망이다. 지난해 가까스로 매각 위기를 넘기며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과징금 철퇴에 이어 정부와 국회의 대대적인 제도 손질 움직임에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일단 해외 사업과 미래 모빌리티 등 불확실성이 그나마 덜한 성장 영역에 꾸준히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목적지 미표시 두고 택시·플랫폼 '온도 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11일에 이어 25일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목적지 미표시'와 '호출료 정부 승인제' 도입이다.
작년 방역 조치 완화로 수요가 폭증하면서 택시 대란이 일어났을 때 일부 기사들이 장거리 손님만 태우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플랫폼은 손님이 택시 타기 전에 기사에게 도착지를 사전에 고지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올 초 원희룡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도 KTV 토론회에서 "문제는 골라잡는 것이다. 단거리 이동은 기피 손님이 된다"며 "이 부분을 없애기 위해 목적지 미표시를 법으로 강제하려고 한다. 역점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카카오T는 추가 요금을 내고 무조건 배차를 보장하는 '블루'나 '부스터 호출'은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무료까지 대상을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위 의원 대부분은 이 개선안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수익성을 따져 앱 대신 배회영업을 택하는 사례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수상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앞서 소위에서 "공급이 부족할 때가 되면 기사들이 단거리 손님이 많은 지역 근처에 가지 않는다"며 "(목적지 미표시를 확대하면) 앱을 꺼서 공급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충안을 이르면 이달 말까지 마련해 다시 머리를 맞댈 방침이다.
택시 4개 단체(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일단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호출료를 전면 유료화하고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을 제안했다. 강제 호출을 수용하되 택시가 출발지까지 가는 비용을 고객이 부담하는 게 골자다.
몇몇 승객의 부당한 호출 취소 방지를 위한 제약과 보상도 이뤄져야 하며, 대기시간 등에 따른 기회비용의 대가는 승객이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기사가 아닌 승객이 갑이 돼야 한다"며 "카카오모빌리티 등에 방향성을 공유했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승객이 많지 않은 시기에는 콜을 받기 위해 (카카오T 등) 가맹에 가입했다가 공급이 모자랄 때 배회영업으로 전환할 목적으로 탈퇴하는 기사들을 강력히 제재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카카오모빌리티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어둡다. 기사들의 배회영업은 열악한 처우가 근본적인 원인이었으며, 목적지 미표시를 강제한다고 해도 새로운 형태의 승차 거부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가뜩이나 택시요금이 올라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호출료까지 정착하면 플랫폼 중개 서비스 이용자들이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카카오T의 월간 활성이용자 수는 1000만명대 초반을 유지하다 지난 2월부터 900만명대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온라인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 고객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 출시 때도 정부 허가받아야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할 때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행법은 플랫폼 사업자가 중개요금을 정할 때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만 하면 됐다. 개정안은 기본요금의 100분의 50의 범위 안에서 정하고, 국토부 장관 및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료 서비스나 수수료로 인한 실질적 택시 요금 인상 효과를 막기 위한 것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년 전 프리미엄 호출 서비스의 가격을 기습 인상하려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바 있다.
지금은 신고제로 완화했지만 국민 생활 밀접도가 높은 이동통신사가 과거 신규 요금제를 발표할 때마다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카카오모빌리티나 우티 등에게는 업무 복잡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사업자가 경영상 판단해서 정해야 할 내용들을 사전에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수요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신규 플랫폼 사업자도 진입을 망설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카카오모빌리티는 공정위와의 법적 다툼도 앞두고 있다.
공정위는 올해 2월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T의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해 가맹택시를 우대했다고 판단하고 25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회사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인 195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당시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가 가맹택시 사업을 시작할 때 수익성이 낮은 1㎞ 미만 단거리 배차는 제외하거나 축소한 것으로 봤다. 수락률이 높은 기사에게 더 많이 배차하는 정책은 비가맹택시에게 불리한 구조였다는 지적이다.
행정소송을 예고했던 카카오모빌리티는 신중하게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공정위의 의결서를 받아봐야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카카오T, 규제 걱정 없는 해외로
카카오모빌리티는 이처럼 규제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국내 차량 호출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 매출 약 7915억원 중 택시·버스·기차·항공·렌터카 등 MaaS(서비스형 모빌리티)를 비롯한 모빌리티 서비스의 비중이 59.1%로 압도적이었다. 직영 택시 및 주차 사업 등 모빌리티 인프라가 20.8%, 물류·배송·대리 등 라이프스타일 서비스가 17.8%로 뒤를 이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더는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한국을 넘어 글로벌 영토 확장에 사활을 걸었다. 자율주행과 UAM(도심항공교통) 등 미래 모빌리티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150개국 20억 이용자를 보유한 영국 모빌리티 중개 플랫폼 스플리트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스플리트가 진출한 나라에서도 카카오T로 택시를 부를 수 있게 됐다.
특히 위챗·알리페이·트립닷컴 등 중국 대표 앱들과도 협업하고 있어 현지 이용자 확보와 신규 파트너 유치 등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는 미래 모빌리티 연구소 '네모개러지'를 열었다. 6개 층 2734㎡ 규모로, 자율주행차 성능 실험과 실내외 측위 기술 검증 등 설계부터 테스트까지 전 과정을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다. 플랫폼에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이동체도 연구한다.
정의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월드컵과 이태원 참사로 성수기 효과를 보지 못해 부진했던 카카오의 모빌리티 매출은 다시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라며 "1분기 시행된 택시요금 인상으로 수요에는 타격이 있었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가맹 문의가 늘어난 효과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