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원정팬도 현장에서 ‘내 팀’을 응원할 권리가 있다. 지난 6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와 울산 현대의 K리그1 2023 경기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한 울산 원정팬의 이야기는 K리그 전체에 숙제를 던졌다.
이날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에 간 A씨는 울산의 열혈팬이다. 그는 울산 홈경기는 물론이고 원정 경기도 자주 챙긴다. 그런데 그가 6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안내받은 곳은 그라운드 밖 트랙 뒤에 한참 떨어진 1층 자리였다.
2층 원정 응원석 바로 아래 쪽의 이 자리는 그라운드와 거리가 한참 떨어진데다 A보드가 시야를 가려 경기를 제대로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홍명보 울산 감독까지 취재진 앞에서 작심한 듯 직접 그 자리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축구계 종사자라면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 저 위치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프로축구연맹 'K리그 안전 가이드라인 8조 관람석 3항'에 따르면 "장애인과 동반자를 위해 전체 관람석 대비 최소 0.5% 이상의 전용좌석을 구비해야 하며 휠체어의 이동이 가능한 동선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수원종합운동장의 경우 0.5% 이상의 장애인 전용좌석은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 전용좌석이 본부석에 있다. A씨는 홈팀 응원석인 본부석 쪽이 아니라 원정 응원석에서 다른 울산팬들과 함께 울산을 응원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원정 응원석 아래쪽의 1층으로 갔다. 결국 경기를 보기에 불편한 자리에 있는 A씨를 본 홍명보 감독의 요청으로 그는 수원종합운동장의 보안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본부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보안 요원의 도움을 받아 원정석까지 이동해 통로에서 경기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종합운동장은 K리그1의 홈구장 중에서도 이동약자가 이용하기 불편한 구장으로 꼽힌다. A씨가 이동하는 것도 보안 요원의 도움이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은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 캠페인을 통해 이동약자를 위한 K리그 경기장 안내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K리그1과 K리그2의 18개 구단이 이동약자가 축구장에 접근할 수 있는 편리한 경로를 안내한다. 여기에 수원종합운동장은 아직 들어가 있지 않다.
프로축구연맹은 “수원FC는 지난해까지도 휠체어 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경사로 입구를 운영하지 않았다. 보안 요원 도움으로 직접 들어 옮기는 식으로 운영했다”며 “하지만 경사로를 운영하는 걸 확인했고, 올해 안에 실사를 마친 뒤 지도를 완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 캠페인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장애인 축구팬도 자신의 팀을 마음껏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K리그 팀의 홈구장 중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렀던 월드컵경기장의 경우 홈과 원정석에 모두 휠체어석이 있다. A씨도 울산 홈경기 때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 홈 서포터즈석 쪽의 장애인석에서 관전한다. 인천전용경기장이나 포항 스틸야드 등도 장애인석이 두 군데 이상 마련돼 홈팀과 원정팀 중 선택해서 관전할 수 있다.
K리그는 홈팀 응원석에서 원정팀의 유니폼을 입거나 원정 응원도구를 지참하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휠체어석이 원정 서포터즈석에 마련되지 않다면 휠체어를 탄 팬은 ‘내 팀’ 유니폼 입고 응원할 자유조차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수원FC 구단 관계자는 이날 “수원도시공사쪽에 (원정석 쪽) 리프트 설치를 요청하고 있다. 당장 설치가 어렵다면, 향후 먼저 원정석 쪽에도 휠체어 관중이 앉을 수 있는 별도의 좌석을 만들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수원도시공사 시설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리프트 설치) 사업을 진행하려면 수원시에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1년에 (휠체어 관중이) 10명 안팎인 걸로 알고 있다. 여기에 몇 억원을 투자하는걸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