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서 조작법을 몰라 헤매던 시니어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라는 단어가 온·오프라인 소비 시장을 점령하는 사이 조금씩 모바일 생태계에 적응하더니 이제는 핵심 고객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처음 컴퓨터와 힙합 음악을 받아들이며 한때 유행을 선도했던 X세대(1970년대생)도 목이 늘어난 민소매 셔츠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IT업계는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한 듯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신장노년층을 겨냥한 전용 데이팅·패션 앱까지 등장했다.
'50세 미만 출입 금지' 시니어 데이팅 앱
요즘 스마트폰 좀 다룬다는 시니어들 사이에서 핫한 앱이 있다. 지난해 10월 등장한 '시놀'이다. '시니어 놀이터'의 약자로, 신노년들이 모여 문화·여가·취미를 공유하고 제2의 짝을 찾는 소셜 플랫폼이다.
50세 미만은 출입 금지다. 허위·악성 이용자를 차단하는 얼굴 인증·키워드 필터링·24시간 모니터링·신고 및 차단 등을 적용했다. 가입 시 1회 카메라로 직접 찍은 얼굴 사진과 프로필 사진을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다. 여성 이용자를 위한 안심번호도 제공한다.
이용자는 '단짝 찾기' 메뉴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친구를 추천받는다. 하루에 4명의 친구를 무료로 확인할 수 있으며, 구독권을 결제하면 매일 친구 10명 소개와 대화 무제한, 나에게 관심 있는 친구 보기 기능 등이 활성화된다.
마음에 드는 짝을 선택하면 관심사와 나이, 직업, 종교, 결혼 상태, 음주량을 볼 수 있다. 상대방에게 편지(메시지)를 보내 관심을 표할 수 있으며, 이를 수락하면 대화로 이어진다.
'취미·여가' 메뉴에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준비돼 있다. 재활 운동과 등산, 동네·박물관 투어처럼 개별 호스트나 지역 문화센터 등이 진행하는 여행·교육·뷰티·건강·쇼핑 유·무료 프로그램에 지원해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개인·그룹 대상, 1회·정기 일정 등 종류는 다양하다.
시놀 곳곳에는 시니어 이용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숨어있다. 글자와 버튼 크기는 쉽게 보고 누를 수 있도록 확 키웠다.
메시지 작성이 힘든 이용자를 위해 95%의 정확도로 음성을 문자로 변환하는 기능을 반영했다. 인공지능(AI)이 매끄러운 대화를 위해 공통 관심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가입 성비는 남자 75%, 여자 25%다. 여성 회원에는 채팅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매일 친구 10명을 소개하는 등 성비를 맞추기 위한 혜택을 마련했다.
시놀 이용자는 "나이가 들면서 만날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외로운 마음에 네이버 밴드에서 활동해왔다"며 "정착할 곳이 없었는데 시놀은 다르다. 글자도 보기 편하게 큼지막하고 또래를 많이 만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김민지 시놀 대표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다. MZ세대와 알파세대를 합친 것 이상으로 베이비부머 시니어 세대가 많다"며 "에이징 테크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아직 액티브 시니어들이 활동할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리드 서비스는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인연과 모임을 찾는 방식을 소개하며 액티비티와 커머스를 바탕으로 시니어를 위한 올인원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로 성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시놀은 앱 다운로드 1만5000건을 달성했으며, MAU(월 활성 이용자 수)는 7000명까지 올랐다. 매칭은 3800여 건이 이뤄졌다.
시놀은 월 구독료 기반을 비즈니스 모델로 잡았으며 2030년 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아무 옷이나 사지 않는 X세대
모바일 트렌드에 절대 뒤처지지 않지만 20대의 과감한 스타일에 부담을 느껴 옷을 고르는 데 한계가 있었던 X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패션 앱도 호응을 얻고 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40·50대 패션 플랫폼 '포스티'는 올해 1분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했다.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350만건을 찍었다.
포스티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쇼핑 생태계가 급격히 확산할 당시 40·50대를 위한 패션 공간이 없는 것에 주목해 카카오스타일이 2021년 8월 출시한 서비스다.
한물간 옷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입점한 브랜드만 1300개가 넘는다. 올리비아로렌·모조에스핀·쉬즈미스 등 인기 여성 패션 브랜드는 물론 제옥스, 핏플랍 등 신발 브랜드, 블랙야크·아이더·까스텔바작 등 아웃도어·골프 브랜드를 만나볼 수 있다.
카카오스타일은 장년층 고객이 백화점이나 아웃렛처럼 직접 옷을 입어보고 품질을 확인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특성을 반영했다.
이에 구매 경험이 있는 브랜드 위주로 진열해 신뢰도를 높인 데 이어 뷰티·명품·오프라인 대형몰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혔다. 가품 우려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본사와 직접 계약해 내놓고 있다.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고객을 위해 소싱 단계에서부터 가격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2015년부터 축적한 AI 기술을 녹여 구매 이력에 따른 개인 맞춤형 추천도 지원한다.
50대 이상 시니어 고객은 검색 옵션이 복잡하면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상품 상세 정보 확인이나 배송 현황 조회 절차는 대폭 간소화했다.
또 홈쇼핑과 친근한 고객을 위해 시청부터 구매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을 론칭했다. 하루 시청자 수 12만명, 억대 거래액을 기록한 방송도 있다.
카카오스타일 관계자는 "올해는 골프와 아웃도어 등 X세대가 많이 찾는 품목을 중심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할 것"이라며 "여성들이 남편의 의류를 함께 구매하는 것에 착안해 남성 브랜드도 더 많이 확보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잘나가는 포스티에게도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라포랩스가 2020년 9월 선보인 '퀸잇'이 그 주인공이다.
퀸잇은 지난 5월 사용자 수 187만명으로 여성의류 앱 순위에서 에이블리(365만명)와 지그재그(346만명)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작년에는 톱 배우인 김희선을 앞세운 광고를 선보였는데, '40대 여성 2명 중 1명이 이용한다'는 문구를 강조했다.
퀸잇은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300여 명의 X세대 여성을 직접 만났는데, 기존 패션 앱이나 포털에서는 원하는 옷을 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노출이 심하거나 달라붙는 옷, 브랜드 없는 보세 의류는 쉽게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퀸잇 역시 AI 기반으로 추천하며, X세대 여성 체형에 최적화한 상품을 보여준다. 백화점을 비롯한 디자이너 브랜드 1500여 곳이 입점했다.
퀸잇은 타깃 고객에 집중한 전략으로 론칭 2년 8개월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550만명 이상이 앱을 다운로드한 것으로 집계됐다. 월 거래액은 1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퀸잇은 쇼핑 경험을 혁신해 30대도 타깃 고객으로 품을 방침이다. 패션을 넘어 2022년에는 X세대를 위한 신선식품 산지 직송 커머스 플랫폼 '팔도감'을 공개했고, 15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우리나라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모바일 생태계 속 시니어·X세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모든 소비자는 자신보다 젊은 분위기를 쫓아가기 때문에 대놓고 '40·50대 전용'이라고 홍보하면 역효과를 볼 수 있다"며 "경제력을 갖춘 시니어가 많아 이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