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46) 두산 베어스 감독이 자신을 향한 의구심을 씻어내고 있다. 두산의 42년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깊게 새겼다.
두산은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홈 경기에서 8-5로 승리했다. 지난 1일부터 이어온 연승을 11경기로 늘렸다. 11연승은 두산이 1982년 OB 베어스로 창단된 이후 41년 넘게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26일 롯데전 패배로 연승의 숫자는 마무리됐지만, 팀과 감독이 자신감을 가지기 충분한 숫자다.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11연승 기간 신들린 작전과 투수 교체 같은 건 없었다. 순리대로 운영해도 선수들이 120% 활약했다. 부진했던 이들도 하나씩 살아났다. 간간이 내린 비도 지칠 수 있는 선수들의 체력을 지켜줬다.
25일 롯데전에서도 선발 브랜든 와델이 5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활약했다. 전반기 막판 부상으로 이탈했던 허경민은 직전 광주 KIA 타이거즈전 결승 홈런에 이어 이날 결승 2루타를 쳐냈다. 올 시즌 부진했던 김재환의 투런포는 화룡점정이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지난해 두산은 창단 후 처음으로 9위까지 추락했다. 2022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올랐던 동력은 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왕조 주축 다수가 FA(자유계약선수)로 떠났고, 남은 선수들도 부진했다. 빈자리가 늘었지만, 새 얼굴이 부족했다. 명장으로 불린 김태형 당시 두산 감독도 수습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런 상황에서 두산은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던 젊은 리더 이승엽을 택했다. 이어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 양의지를 영입했지만, 전문가들은 두산을 5강 후보로 거론하지 않았다.
행운과 기적 사이에서 이승엽 감독은 새 길을 만들고 있다. 두산의 전성기는 언제나 젊은 감독으로부터 시작했다. '허슬두'와 '화수분'의 문을 연 김경문 전 감독은 2004년 첫 시즌을 포함해 세 차례 KS에 진출하며 두산의 전성기를 열었다. 김태형 감독은 2015년 부임하자마자 KS 우승을 거둬 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이승엽 감독도 첫해부터 안착하고 있다. 선수들로부터 "감독님 믿음 덕분에 11연승을 거뒀다"는 인정을 받았다. 호세 로하스, 강승호 등 2군을 다녀온 이들은 물론 양의지, 라울 알칸타라, 곽빈 등 투타 에이스까지도 모두 부진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감독은 믿고 기다렸고, 그들은 연승의 주역이 됐다.
이승엽 감독은 11연승을 통해 2000년 김인식 전 감독, 2018년 김태형 전 감독이 세운 10연승 기록을 깼다. 총 5번의 KS 우승을 합작한 두 선배 감독을 넘어 두산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선배 사령탑과 비교하는 주위 평가에 대해 이 감독은 "감독을 맡은 지 1년도 안 됐다. 많이 부족하고, 팀은 이제야 조금씩 좋아지는 시점"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개막전부터 힘든 시기가 많았지만, 팀이 조금씩 안정돼 왔다. (내가) 선수들을 알아가면서 경기를 풀어갔고, 조금씩 좋아진 게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선수들이 잘해줬다"며 공을 돌렸다.
이승엽 감독은 자신과 팀을 향한 의구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즌 전 평가가 낮아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면서도 "5위권에 들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에 '더 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 '주위 평가가 잘못됐다는 걸 보여줘도 좋지 않을까'는 생각을 항상 했다. 중간 평가는 뒤집었다고 볼 수 있겠다"고 했다.
2014년 6위에 그친 두산은 김태형 감독 선임과 대형 투자(장원준 4년 84억원 FA 영입)를 기반으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 후 KS 역전 우승을 거뒀다. 9위로 떨어진 후 이승엽 감독과 양의지를 영입한 두산은 공교롭게도 올해 역시 3위까지 올라가 있어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이승엽 감독은 "모든 평가는 시즌을 끝마치고 받아야 한다. 내일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들뜰 수 있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신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모두 만족하지 않고 집중해서 지금 좋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하겠다. 부진해도 더 많이 (순위가) 떨어지지 않게 버티는 팀을 만들겠다. 평가는 시즌이 끝나고 해달라"고 전했다.
이어 이승엽 감독은 "팬분들께서 더 많은 승리를 원하시는 걸 알고 있다. 선수들은 어떤 경기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줄 거다. 시즌이 끝났을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승리를 거두도록 하겠다"며 "시즌 후 '정말 고생했구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아직은 이르다. 더 달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