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hat GPT, Gemini 생성 이미지) 일상생활에서 분쟁이 생겨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 결국 약속이라도 한 듯 ‘법대로 해!’라고 외치게 됩니다. 저작권 분쟁도 다르지 않습니다. 침해가 있다면 제재되어야 하고, 정당한 권리자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권리 보호의 필요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남용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재산권 분쟁은 일정 부분 금전적 배상으로 어느 정도 사후 회복이 가능하지만, 콘텐츠 산업은 다른 민사분쟁과 그 결을 달리합니다.
공개 시점과 유통 타이밍, 화제성이 가치 형성의 핵심인 콘텐츠 특성상, 유통이 막히거나 시기를 놓치는 것은 곧 시장 퇴출을 의미합니다. 또한 분쟁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여론은 민감하게 움직이고, 그 여론이 작품의 생명력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 법적조치, 가처분의 허와 실
바로 그 특수성 때문에 콘텐츠 분쟁에서 가장 예민하게 다뤄지는 법적 수단이 가처분입니다. 본안 판결 전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효과를 내는 가처분은, 상대방의 이용을 즉각 중단시키는 가장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동원되곤 합니다. 본래 가처분은 본안 판결 전까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적이고 잠정적인 조치여야 합니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에서 가처분의 효력은 너무 강하게 작용합니다.
이는 실제 사례에서도 발견됩니다.
2020년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는 특정 악곡이 극중 인물들의 잃어버린 가족 관계를 암시하는 핵심적인 정서적 매개체로 사용되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해당 곡을 가창하거나, 기타 연주를 곁들여 부르는 등으로 작품 전체의 감정선을 극대화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악곡의 저작권 지분을 상속받은 2인 중 1인은, 자신의 개별적 허락 없이 악곡이 활용된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방송사와 제작사를 채무자로 하여 ‘저작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이 분쟁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드라마 방영 중이던 2020년 6월에 가처분 신청이 접수됐으나 작품은 그해 9월에 이미 종영됐습니다. 1심 판결은 종영 3개월 후인 2020년 12월에야 내려졌고, 이후 진행된 항고심 판단은 종영 후 2년이 지난 2022년 10월에서야 확정됐습니다.
이후 2023년 3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과 12월 소송비용액 확정을 거치면서, 해당 사건은 가처분 1심과 항고심 사이에만 약 2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최종 마무리됐습니다. 방영과 유통, 소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콘텐츠 산업에서 이 시간은 단순한 사법 절차 지연을 넘어 사실상 콘텐츠의 시장성 소멸을 의미합니다.
사건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1심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소송비용을 채권자(신청인)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어진 항고심 역시 추가 및 확장된 신청을 모두 기각하고, 항고 제기 이후의 비용 또한 채권자(항고인)가 부담하게 했습니다. 이후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과 방송사·제작사의 신청에 따른 소송비용액 확정 절차가 인용되면서 사건은 최종 종결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가처분을 신청한 상속인의 사용중지 요구를 모든 심급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셈입니다. 사후적으로 평가했을 때, 작품의 이용 중단까지 요구했던 이번 가처분 신청은 법률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무리한 주장이었음이 확인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권리보호의 방패 vs 콘텐츠 생명력의 치명타
이 사건처럼 권리 침해 의심만으로 작품 전체의 유통을 중단시키는 강력한 금지 조치가 실제 허용됐을 경우, 가처분이 잠정적 보전 처분을 넘어 선제적 제재 수단으로 변질되며 콘텐츠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설령 본안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더라도, 그 사이 작품 방영은 종료되고 투자금 집행과 해외 판매, 플랫폼 노출 등의 결정적 시점은 이미 지나가 버립니다. 이러한 콘텐츠 시장의 특성상, 가처분은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 행사될 경우 콘텐츠의 생명력을 뿌리째 흔드는 파괴적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의 항고심 결정문에 따르면, 실제로 신청인(항고인)은 작곡가의 상속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며, 드라마 속 음악 이용 부분의 제거와 서비스 중단, 즉 다시보기 서비스, 국내외 동영상 제공, OTT 및 스트리밍 플랫폼 이용 제한, 파일 회수·폐기까지 폭넓게 청구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로 인해 필자가 수행해 온 글로벌 플랫폼의 콘텐츠 저작권 클리어런스(Clearance) 실무에서는 권리 확보 단계에서부터 권리자의 구제수단을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요청받곤 합니다. 설령 계약 위반이나 침해 의심이 있더라도 계약 해지, 사용허락 철회, 방영금지 가처분 등의 금지명령으로 작품 이용 자체를 중단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사후 금전 배상으로만 해결하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는 권리자의 권익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리 보호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방식 또한 산업의 속도와 회복 가능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며, 콘텐츠 산업에서의 가처분은 자칫 작품 전체의 생명력을 먼저 끊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합리적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가처분 제도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 유통의 전면 중단을 쉽게 허용하는 운용 원리와 명확한 기준의 부재에 있습니다. 가처분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인용돼야 하며, 본안 소송은 지금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행돼야 합니다. 가처분 조치 후 몇 년 뒤 결과가 바뀌는 경우, 이미 작품의 화제성과 시장 가치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면 그 승소 판결은 너무 늦은 결과일 뿐입니다.
동시에 산업 현장의 계약 단계에서는 라이선스 범위, 각색과 편곡의 한계, 2차적 활용 가능성, 크레딧 표기 및 대가 지급 기준을 보다 정교하게 명문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후적으로는 조정, 중재, 손해배상 중심의 실효적 구제수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에서 가처분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구조는 권리 보호와 산업의 지속 가능성 모두를 저해합니다. 권리를 지키는 일과 콘텐츠를 살리는 일,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가능케 합리적인 제도와 계약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콘텐츠 산업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대표(사진=본인 제공)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