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더 할 말이 없는 기분이었다. 대개 작품을 보면 ‘이 장면은 왜 이렇게 찍었을까’, ‘이건 무슨 뜻이었을까’ 궁금한 게 생기게 마련인데, 정우성 감독의 영화 ‘보호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보호자’ 개봉을 며칠 앞두고 정우성 감독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로 향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인터뷰에서 뭘 물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필 비가 많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목재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2층에 마련된 인터뷰 공간은 조명의 밝기가 1층보다 더 낮았다.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우성이 있었다.
나른하게 감겼다 떠지는 눈꺼풀을 보는데 마치 그 속도와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공기를 휘어잡는다는 느낌. 그런 압도적인 나른함은 처음이었다. 정 감독은 말을 하면서 자꾸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럴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주변의 공기까지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마법. 그것이 바로 정우성이고, 그런 정우성이 만든 영화가 ‘보호자’구나 싶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보호자’는 액션의 외피를 쓴 복합장르물이다. 액션 안에 드라마도 있고 유머도 있다. 친구들과 팝콘을 먹으면서 보기보단 영화제 같은 곳에서 늦은 시간 홀로 앉아 몰입해 보고 싶은, 왠지 그러고 나오면 쓴술이 당길 듯한 그런 영화다.
플롯은 심플하다. 10년 만에 출소해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혁(정우성)과 그를 노리는 이들 사이의 이야기. 이야기는 예상한대로 흘러가고, 예상한 결말에 가 닿는다. 정우성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설정은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심플한 대답. 더 따지고 들어갈 수도 없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마음에 안 든다고 설정을 다 바꾸면 아예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진부할 수 있는 설정들을 남겨두고 시작을 했죠. 그 안에서 연출가로서 정우성이 어떤 언어를 선택할까를 고민하며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어요. 누구의 레퍼런스를 따르지 않고, 시나리오를 보고 제가 느끼고 상상한 것을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이어갔죠.”
정우성은 처음 배우로 ‘보호자’와 연을 맺게 됐다. 시나리오가 크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오랫동안 지켜봤던 영화계 후배가 처음으로 제작을 하는 작품이라는 말에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단다. ‘이 캐릭터를 맡아서 액션이든 뭐든 뭔가 새로운 것을 하나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배우로서 역할은 완성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연출까지 맡게 되자 고민이 깊어졌다. 정우성은 “‘넌 무엇을 위해 (연출에) 도전을 했니’라고 자문을 하며 시나리오를 바라봤다”고 이야기했다. 정우성이 ‘정우성다운 것’에 골몰했던 이유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는 제가 예전에 즐겨듣던 음악이에요. 경쾌하지만 경쾌함만을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은 멜로디. 그 미묘한 리듬이 갖고 있는 질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도 그동안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많이 채택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려고 노력했죠.”
97분이라는 다소 짧은 러닝타임에도 영화는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놓는다. 애당초 밋밋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다는 명백한 한계점을 차치하면 굳이 더 따지고 들어갈 지점도 없고, 납득되지 않는 설정이나 장면도 없다. “감독한테 이렇게 궁금한 게 없는 영화는 처음”이라고 하자 정우성은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내밀며 주먹 인사나 하자고 했다.
데뷔한 지 30년. 작품의 만듦새는 영화인으로서 보낸 정우성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는 말로 갈음한다.
굳이 하나 칭찬하자면 아이를 다루는 방식이다. 납치된 10살 인비(류지안)는 극에서 수동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아이를 대상화하려고 하지 않은 감독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정우성 감독은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순수함을 내걸고 아이를 지키기 위한 폭력을 다 정당화하면서 정작 아이는 보여주지 않는 작품이 많더라”며 “작품 속에서 아이를 그 존재 자체로 서게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