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재능이다. '만년 유망주'로 불렸던 강승호(두산 베어스)가 진기록을 세우며 KBO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강승호는 지난 15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4타수 4안타 1볼넷 3득점 3타점을 기록, 두산의 8-6 승리를 이끌었다. 단순히 안타를 많이 친 게 아니다. 안타·2루타·3루타에 홈런까지 한 경기에서 모두 친 히트 포 더 사이클이었다. KBO리그 역사상 서른 번째 기록이다.
이는 첫 번째 진기록이기도 했다.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출발한 강승호는 1-1 동점인 3회 두 번째 타석 때 좌월 솔로포를 치더니 3루타(5회 초) 2루타(7회 초)와 내야안타(9회 초)를 순서대로 쳤다. 홈런부터 단타까지 역순으로 기록한 KBO리그 최초의 '리버스 사이클'이었다.
리버스 사이클의 반대인 내추럴 사이클도 KBO리그 역사상 단 한 번(1996년 롯데 자이언츠 김응국)에 불과했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MLB)에서도 344회의 히트 포 더 사이클 중 내추럴 사이클은 15회, 리버스 사이클은 10회밖에 나오지 않았다.
강승호는 경기 후 방송 인터뷰를 통해 "수비에서 나 때문에 준 점수(5회 포구 실책)가 있어 타석에서 더 집중하려 했다. 그래서 좋은 기록이 나온 것 같다"며 "(마지막 타석에선) 단타 하나면 사이클링 히트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팀이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여서 크게 의식하진 않았다. 단타보다는 장타를 치려 했는데 운 좋게 기록이 나왔다"고 웃었다.
강승호는 진기록 달성이 놀랍지 않은 재능을 갖춘 선수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한 그는 지난 2013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모교와 청소년 대표팀 타선을 이끌던 그해 야수 중 최대어였다. 그러나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했고,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를 거쳐 두산까지 유니폼을 두 번 갈아입었다.
LG 시절 선배였던 박용택 KBSN 스포츠 해설 위원은 그를 두고 "참 알 수 없는 후배"라며 "정말 어려운 공을 쳐 내기도 한다. 어려운 타구도 잡아낸다. 그러다 쉬운 공을 공략하지 못 하고, 쉬운 타구를 놓치기도 한다"고 평했다. 기복이 심하다는 뜻인 동시에 잠재력은 확실했다는 거다.
강승호는 지난해 팀 내 야수 고과 1위에 산정되는 등 두산 이적 후에도 주전 기회를 매년 받았지만,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기복이 있었다. 그래도 가을 만큼은 강승호의 계절이 확실하다. 17일 기준으로 9월 타율 0.447 맹타를 휘두르는 중이다. 커리어 통산으로도 9월 이후 타율 0.296와 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 0.781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성적(타율 0.251 OPS 0.682)보다 크게 좋다.
최근 두산은 다시 상승세를 타며 5위 싸움 중이다. 이런 시점에 '9월 사나이' 강승호의 활약이 반갑다. 그는 "최근 계속 타격감이 좋았는데 오늘(15일)도 그랬다. 감각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더 빨리 잘했으면 좋겠지만, 나한테 맞는 시기가 온 만큼 계속 좋은을 성적 이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