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가 달랐다. 김민재와 아사노 다쿠마의 한·일 맞대결로도 주목받았던 바이에른 뮌헨과 VfL보훔 간 맞대결. 김민재는 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시종일관 ‘월드클래스’의 존재감을 보여준 반면 아사노는 후반 23분 만에 교체됐다. 김민재의 수비에 막혀 공격 기회가 좌절된 뒤 허리를 숙인 채 허탈해하던 아사노의 모습은 둘의 실력차를 고스란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김민재는 23일(한국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3~24 독일 분데스리가 5라운드 홈경기 보훔전에 선발 풀타임 출전해 팀의 7-0 대승을 이끌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포함 최근 공식전 6경기 연속 선발 출전이다. 경기를 앞두고 체력 안배를 위한 휴식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토마스 투헬 감독은 수비 선발 라인업에 김민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넣고, 마지막까지 빼지 않았다. 김민재에 대한 감독의 신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민재도 투헬 감독의 믿음에 답했다. 소파스코어에 따르면 이날 김민재는 수비 액션만 무려 13회나 기록했다. 태클과 슛 블록, 클리어링, 파울, 인터셉트 등 수비 관련 모든 기록인데, 김민재가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았다. 7-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일방적인 흐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눈에 띄는 기록이었다. 간간이 나오던 보훔의 추격골 의지마저 김민재가 번번이 꺾었다는 의미다.
또 클리어링은 무려 10회나 기록했고, 공중볼 경합에서도 8차례 중 무려 7차례를 이겨내 승률 88%를 기록했다. 모두 양 팀 통틀어 최다였다. 지상볼 경합과 태클 모두 1차례 시도해 어김없이 성공으로 이어갔다. 수비 관련 지표만이 아니었다. 패스 성공률은 94%에 달했는데, 이날 양 팀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시도(81회)해 가장 많이 성공(76회)시켰다. 이 가운데 3차례나 파이널 서드 지역으로 패스를 전달했고, 3차례 시도한 롱패스 역시 모두 정확하게 동료에게 연결됐다. 수비와 공격에 걸쳐 이번에도 역시 월드클래스라는 걸 보여준 존재감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전반 추가시간 연이은 수비 장면이었다. 상대 측면 수비수를 한차례 걷어낸 뒤 팀 동료와 자신에 맞고 공이 흘렀다. 상대가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이를 또 막아냈고, 자신의 발밑으로 흐른 공을 몸을 빙글 돌려 걷어냈다. 수비 장면 내내 높았던 김민재의 수비 집중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평점도 높았다. 축구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 평점은 8.4점을 기록했고, 폿몹 8점, 소파스코어 7.7점 등을 기록했다. 이날 김민재만 홀로 풀타임을 뛰었고 파트너는 마테이스 더리흐트가 선발, 그리고 후반전엔 다요 우파메카노와 각각 호흡을 맞췄다. 독일 매체 바바리안풋볼은 “바이에른 뮌헨의 모든 센터백은 ‘월드클래스’다. 오랜만에 선발로 출전한 더리흐트의 활약과 골은 바이에른 뮌헨 수비진에 매우 재능 있는 선수가 3명이나 있음을 확인해 줬다”고 평가했다.
일본인 공격수 아사노와는 클래스가 다른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날 김민재는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를, 아사노는 보훔의 투톱 공격수로 나서 한국과 일본의 공·수 맞대결로도 주목을 받았던 경기였다. 자연스레 둘의 경합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사노는 68분 동안 단 1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고, 패스도 7차례밖에 시도하지 못했다. 볼 터치 횟수 자체가 13회에 불과했다. 모든 경합을 김민재와 펼치진 않았으나 지상볼 경합 승률은 17%(1회 성공), 공중볼 경합 승률은 0%에 그쳤다. 앞서 김민재의 경합 기록과 판이하게 다른 흐름이었다.
특히 아사노가 교체 아웃되기 직전 장면은 둘의 클래스가 워낙 컸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후반 22분 바이에른 뮌헨 수비 왼쪽 측면 뒷공간을 향한 전진 패스가 전달됐고, 아사노가 이를 잡으려 뛰었다. 그러나 이미 상대의 패스 줄기를 눈치챈 김민재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아사노는 김민재의 뒤에서 공을 빼앗으려 했지만 김민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골라인을 벗어나는 공을 지켜냈다. 결국 공은 바이에른 뮌헨의 소유권이 됐다. 아무렇지 않던 김민재의 뒤에서 아사노는 양 무릎을 두 손으로 잡고 허리를 숙인 채 허탈해하는 모습이었다. 실력 차 만큼이나 평점 역시 격차가 컸다. 김민재에게 8.4점을 준 후스코어드닷컴은 아사노에겐 5.6점을 주는데 그쳤고, 폿몹 평점 역시 5.6점, 소파스코어 평점은 6.1점이었다.
김민재가 최후방에서 월드클래스 존재감을 보여주는 사이 전방에선 그야말로 골 잔치가 터졌다. 이번 시즌 가장 많은 무려 7골이나 터뜨리며 대승, 분데스리가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에서 7-0 대승을 거둔 건 지난해 8월 이후 1년여 만인데,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 역시 보훔이었다.
전반부터 골 폭풍을 몰아쳤다. 전반 4분 역습 상황에서 킹슬리 코망의 크로스를 막심 추포 모팅이 마무리하며 포문을 열었다. 8분 뒤 추가골 역시 역습 상황에서 나왔다. 알폰소 데이비스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드리블로 돌파하다 수비 맞고 오른쪽으로 흐른 공을 해리 케인이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기세가 오른 바이에른 뮌헨은 거침이 없었다. 전반 29분엔 요슈아 키미히의 코너킥을 더리흐트가 헤더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이어 전반 38분엔 케인과 르로이 사네의 합작골까지 터졌다. 케인은 하프라인 아래에서 최전방을 향해 날카로운 침투 패스를 건넸고,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사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후반에도 바이에른 뮌헨은 경기를 압도했다. 후반 9분 상대 수비수의 실수를 가로챈 추포 모팅이 역습을 전개했고, 슈팅이 수비수 손에 맞으면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케인은 깔끔하게 추가골을 넣었다.
이어 후반 36분에도 전방에서 수비수의 패스 미스를 가로챈 뒤 역습을 전개했다. 케인이 왼쪽으로 내준 패스를 마티스 텔이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43분엔 누사이르 마즈라위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려준 낮은 크로스를 케인이 절묘하게 방향을 바꿨다. 팀의 7번째 골이자 이날 자신의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승리로 바이에른 뮌헨은 지난 4라운드 바이어 레버쿠젠전 2-2 무승부의 아쉬움을 털고 분데스리가 12연패를 향한 순항을 다시 이어갔다. 리그 성적은 승점 13(4승 1무), 18득점·4실점이다. 특히 지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UCL 4-3 승리에 이어 최근 2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넣는 맹폭도 이어갔다. 케인은 토트넘을 떠나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뒤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이날 7골 가운데 5골에 관여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최근 공식전 3경기 연속골에 해트트릭까지 달성하며 새로운 무대에서도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