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NL) 최우수선수(MVP) 후보 0순위는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다. MLB 역대 5번째 40홈런-40도루 기록을 달성한 아쿠나 주니어는 사상 첫 40홈런-70도루에 도전하고 있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아쿠나 주니어가 없었다면 NL MVP는 LA 다저스 리드오프 무키 베츠가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거다.
베츠의 성적은 24일(한국시간) 기준 타율 0.309(560타수 173안타) 39홈런 105타점이다. 출루율(0.411)과 장타율(0.593)을 합한 OPS가 1.003에 이른다. 홈런(종전 최고 35개)은 커리어 하이. 리드오프로 공격 활로를 뚫어내며 125득점을 올렸다. 도루까지 13개를 성공하는 등 공격 전 부문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지난겨울 베츠는 벌크업(근육 키우기를)을 통해 몸무게를 76.5㎏에서 80㎏으로 늘렸다. 흥미로운 건 1m75㎝로 비교적 작은 그의 키다. 일반인과 비교해도 체격이 크지 않은데 MLB 정상급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만약 베츠가 홈런 1개를 추가하면 MLB 역사상 1m75㎝ 이하의 키로 40홈런에 도달한 역대 네 번째 선수가 된다. 앞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1929년 멜 오트와 1930년 핵 윌슨, 그리고 1953년 로이 캄파넬라가 있다. 세 선수 모두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된 전설적인 타자들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북미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체격은 더 커지고 있다. MLB도 마찬가지다. 통산 660홈런을 기록한 레전드 윌리 메이스의 키는 1m78㎝. 메이스의 전성기는 1954년부터 1965년까지 12년이다. 이 기간 키 1m83㎝, 몸무게 90㎏ 이상의 체격으로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18명에 불과하다. 베츠의 MLB 커리어가 시작된 2014년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113명에 이른다.
올해 MLB에서 40홈런을 넘었거나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선수는 6명(매트 올슨.피트 알론소·카일 슈와버·오타니 쇼헤이·아쿠나 주니어·베츠)이다. 베츠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평균 키와 몸무게는 1m88㎝·101㎏. 체급별 종목이 아닌 이상 웬만한 스포츠는 체격이 파워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세계에서 베츠는 '별종'에 가깝다.
현대 야구에서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좋은 타자들은 다음 조건을 얼마나 충족하느냐다. 먼저 좋은 공에 스윙해 타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강한 콘택트로 적당한 높이 이상 타구를 띄워야 한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가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타자가 베츠라고 입을 모은다.
베츠는 95마일(152.9㎞/h) 이상 스피드에 발사각이 5도 이상 되는 타구 비율이 19%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갖췄다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15.5%)에 3.5%포인트(p) 앞선 1위. 베츠의 타구 스피드나 타구 거리 등은 상위권에서 거리가 멀다. 올해 최고 타구 스피드가 110.1마일(177.2㎞/h)로 리그 전체 177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거리가 120m나 150m나 펜스만 넘기면 홈런이다. 베츠는 정확하고 강한 스윙, 그리고 공을 띄우는 기술로 체격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체격도 단지 수치에 불과하다'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베츠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