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다. 8일 기준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섭씨 2.3도까지 떨어졌다. 11월 초인데도 사람들은 겨울 패딩을 꺼내 입었다. 오직 한 곳, 잠실야구장은 예외였다. LG 팬들은 패딩 대신 가을 유광잠바를 착용했다.
LG는 지난 7일부터 KT 위즈와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LG가 KS에 올라온 건 지난 2002년 이후 21년만. 우승은 1994년 이후 29년 동안 없었다.
LG 팬들의 뜨거운 열망이 '이상 고온'을 만들고 있다. 이미 정규시즌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팀이 호성적까지 따르니 역대급 흥행이 기록됐다. LG는 올해 최종 관중 수 120만 2637명으로 10개 구단 체제 이후 최초로 120만 관중을 달성했다.
KS 예매는 전쟁, 그 이상이었다. 지난 6일 인터넷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동시 접속자가 폭주했다. 포스트시즌 단독 판매사인 인터파크 기준 대기자가 10만 명 이상이었다. 잠실구장에 들어올 수 있는 관중은 2만 3750명뿐. 대기자가 최대 20만 명 이상까지 찍힐 정도로 예매 경쟁이 치열했다.
잠실구장 전역이 LG 유광잠바와 노란 응원 수건으로 가득 찼다. 구광모 LG 그룹 회장이 이례적으로 현장을 찾았다. 1994년 마지막 우승 배터리였던 김용수-김동수가 시구와 시포를 각각 맡아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상대 선수들도 LG 팬들의 열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KT 유격수 김상수는 "그냥 즐기겠다. (LG는) 프로야구에서 손꼽히는 톱 클래스 인기 팀이다. 소름이 돋는다. 반대로 날 응원한다고 생각하고 뛰려 한다"고 했다. KT 투수 고영표는 "그런 재미도 있다. 상대 팬들도 많지만, 좋은 플레이를 해서 우리가 승리했을 때 (더) 짜릿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순간을 가장 즐기고 있는 건 역시 LG 팬들이다. 우승하지 못한 29년 동안 LG를 응원해 온 팬들 저마다의 사연도 달랐다.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금강 씨는 5세 때인 1994년 응원을 시작했다. 이 씨는 "그때는 1번 타자 유격수 류지현이 언제나 최고의 선수였다. 내겐 세상에서 제일 야구를 잘하는 선수였다"며 "대학 입학 후인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LG 야구에 빠졌다. 성적이 좋지 못했을 때를 더 많이 봤다"며 미소 지었다.
현재 미국에서 거주 중인 이 씨는 KS를 보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친 지난해에도 한국을 찾았으나, LG가 플레이오프(PO)에서 패해 KS 관람에 실패했다. 결국 올해 드디어 KS의 감동을 진하게 느끼고 있다.
20대인 김영빈 씨는 LG 팬 2세다. 우승은 물론 2002년 마지막 KS도 보지 못한 나이다. 김 씨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09년부터 응원했다. 아버지가 LG 팬이셨는데, 어쩌다 누나와 본 경기(두산 베어스전)에서 LG가 홈런 4개를 치고 이겼다. 그때 완전히 빠졌다"며 "그해 그 경기보다 행복하게 야구를 본 날은 없었다"며 웃었다. LG는 2009년 당시 8팀 중 7위에 불과했다. 김 씨는 "당시 워낙 잘하는 팀들이 많아 '환승(응원 팀을 바꾸는 것)'을 고민했다. 그래도 LG 선수가 좋아 남았고, 팀이 좋아져 계속 버텼다"고 회상했다.
이날 잠실구장에는 젊은 팬들뿐 아니라 1982년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 시기부터 응원했던 '올드팬'들도 많았다. 손호익 씨는 "LG는 내 인생"이라 했다. LG가 곧 그의 고향이기도 했다. 손 씨는 "부모님이 이북 출신이시라 서울에 살면서도 여기가 고향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럴 때 프로야구가 생겼고, MBC 청룡(LG의 전신)과 LG를 응원하면서 내 정체성처럼 됐다"고 떠올렸다.
잠실구장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들도 이 열기를 피부로 느낀다. 3루 관중석 쪽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권은희 씨는 "팬들이 구장에 오는 시간이 평소보다 빨라졌다"고 전했다. 그만큼 KS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이들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권 씨는 "보통 이곳에는 원정 팬들이 많이 오시는데, 오늘은 확실히 LG 팬들이 많더라"며 "점주들끼리는 이번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갔으면 좋겠다고들 한다"고 기대했다.
29년 만의 우승 도전, 팬들은 간절한 만큼 행복하다. 손호익 씨는 "LG가 KS에 다시 올라오는 걸 보면서 '이렇게 행복한 인생도 있구나' 싶었다. 영원히 다신 못 볼 줄 알았다"며 껄껄 웃었다. 손 씨는 '캡틴' 오지환의 미디어데이 인터뷰를 인용하며 "시리즈가 6차전까지 갈 것 같다. 우리 주장이 그렇게 말했으니까"라며 "물론 빨리 이겨도 좋겠지만, 오랜만에 오지 않았나. 이 분위기를 더 오래 느껴보고 싶다"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