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저에게 생각하는 ‘착한’ 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밝은 로코만 고집해야 할까? 생각이 들 때도 있었죠. 그런데 스스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갈증이 해소됐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많이 도전해 보자!’에요. 데뷔 17년 차이지만 생각보다 안 해본 게 너무 많더라고요. (웃음)”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박보영을 만났다.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 (이하 ‘정신병동··’)에서 3년 차 간호사 다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그는 데뷔 17년차 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여전히 ‘성장형 배우’라는 걸 입증했다.
‘정신병동··’은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처음 하게 된 간호사 다은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 중 다은은 밝고 따뜻한 사람이다. 매 순간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성격이 ‘독’이 될 때도 있다. 박보영은 이런 다은의 성격이 본인과 비슷해 이 작품을 더욱 찍고 싶었다고 했다.
“다은이를 보면서 ‘나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애정이 더 갔나 봐요. 저도 다은이처럼 이타적이게 살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는 아는데, 정작 내가 좋아하는 건 스스로 모르더라고요. 이런 면이 저랑 비슷했어요.”
‘정신병동··’에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불안장애부터, 가성 치매 증상이 나타난 워킹맘 등 매회 여러 질환이 나온다. 박보영에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에피소드는 무엇일까.
박보영은 “워킹맘 이야기다. 나와 제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많이 울었다. ‘애쓰지 말라’는 선배들의 연기가 좋아 울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워킹맘뿐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신병동··’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이끌어 가는 의학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간 의학 드라마들과 차별점이 있다. 박보영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실제 간호사분들의 일상을 지켜봤다”며 “인수인계할 때 환자 상태뿐 아니라 요즘 어떤 환자랑 친하게 지내는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다든지 등 사소한 것까지 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모습이 가장 놀라웠다”고 밝혔다.
극 중에서 박보영은 우울증에 걸린다. 정신병동에서 일하면서 본인의 행복을 챙기는 법을 잊어버리고 환자들과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아무것도 먹지도 일어나지도 않은 채 침대에만 누워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박보영은 ‘우울증’ 연기를 실감 나게 하기 위해 입으로만 숨을 쉬는 등 부단히 노력했다.
“누구나 살면서 힘들 때가 있는데 그걸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저는 힘들 때 목소리에서부터 생기가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촬영하기 전에 물도 잘 안 마시고 입으로 숨을 쉬었어요. 또 말을 안 하다가 한 마디를 내뱉을 때 나오는 목소리의 갈라짐도 표현하려고 했죠. 촬영할 때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동료 배우분들도 모두 저에게 의식적으로 말을 안 거셨죠.”
사실 박보영에게 간호사 역할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이하 ‘콘유’)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박보영은 “‘콘유’때도 간호사 역할을 맡긴 했지만 ‘정신병동··’과 공통점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면서 “‘콘유’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냐가 포인트라면 ‘정신병동··’은 다은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는지 다룬다”라고 설명했다.
‘콘유’에이어 ‘정신병동··’까지. 그간 작품에서 밝은 역할만 해왔던 박보영의 어두운 연기는 대중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박보영 본인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제 위치를 스스로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제 작품을 선택할 때 부담감 없이 고를 것 같아요. 어두운 연기도 밝은 연기도 모두 자신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