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담고자 한 욕심이 오히려 독이 됐다. 큰 스케일, 빠른 속도감도 빛을 발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 ‘데드맨’이다.
‘데드맨’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 이만재(조진웅)가 1000억 원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작 ‘괴물’ 공동 각본을 쓴 하준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한 후 살기 위해 이름을 팔며 험악한 바지사장계에서 가늘고 길게 살아남아온 이만재. 큰 건 하나를 마지막으로 바지사장계에서 손을 떼려 했지만, 한순간에 1000억 원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돼 중국의 사설 감옥에 끌려간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사설 감옥에서 이만재는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김희애)와 거래로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한다. 이만재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공희주(이수경)는 이만재의 비밀 장부를 매개로 1000억 원 횡령 사건의 진짜 배후를 찾는데 합류한다.
‘데드맨’은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다. 이만재의 이름을 빌려 1000억 원을 가져간 사람을 찾는 게 외적인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정경유착, 부패한 권력 등 정치, 경제범죄가 얽혀있다. 이에 따라 나오는 사람도 많고 그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수많은 사람을 따라 여러 가지 일이 펼쳐지는데, 그걸 따라가며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그저 사건의 배후를 찾기까지 빠르게 달린다. 부족한 개연성에 빠른 속도감이 더해지니 결국 의문만을 남긴다.
이름값, 선택, 책임 등 있어 보이는 단어들이 계속해서 귀에 박히나, 이해는 가지 않는다. 여기에 위인들의 명언, 은유 등이 더해져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흥미로운 요소도 있다. 바지사장이라는 소재는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선명한 색감의 영상미도 돋보이며 음악도 귀를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조진웅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이만재의 독기를 묵직하게 그렸다. 이미지 변신이 돋보이는 김희애는 특유의 분위기로 정치판을 주무르는 심여사의 여유를 표현했다.
입봉작인 만큼 하준원 감독이 최선을 다했다는 건 너무 느껴진다. 그러나 최선이 과도함에 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