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로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솔직하고 진솔한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가 하지원의 그림은 모두 자화상이다. 배우로 20여년, 다양한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기하며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킨 그는 최근 몇 년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에 몰두했다. 배우 하지원이 아닌 인간 하지원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통일로92 KG타워 지하 1층 갤러리선에서 열린 하지원 초대 개인전 ‘핑크 드로잉: 코이그지스턴스 공존’(Pink Drawing : Coexistence 공존) 개막 행사에서 하지원을 만났다. 이번 전시에서 하지원은 개개인이 겪는 혼란을 공존의 시각으로 재정의했다. 누군가와의 공존 이전, 가장 근본적인 자신과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고 벗어날 수 없는 상황도 많잖아요.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마주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이 시대에서 공존하며 살 수 있는 출발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전시에서 하지원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작업한 회화 37점을 선보였다. 비너스, 백설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키마우스 등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캐릭터를 하지원 자신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재해석해 표현했다. 작품 속에는 다양한 레터링 문구가 삽입돼 있고 하지원 본인의 사진을 콜라주한 작품도 있다.
하지원은 “배우로 살아오면서 좋은 날도, 때로는 진짜 별로인 날도 있었고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며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캐릭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떨 때는 ‘난 나니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내 사진으로 콜라주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배우의 일이 어떤 캐릭터가 돼가는 것이라면, 하지원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지원은 맡은 배역을 연구하는 것 이상으로 그림 작업은 고된 과정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캐릭터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끝이 있잖아요. 그런데 나를 찾는 과정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TV 또는 영화로 하지원을 만나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다’는 말에 하지원은 “곧 좋은 작품으로 찾아뵐 것”이라며 웃었다. 하지원이 배우 류승룡과 호흡을 맞춘 영화 ‘비광’은 올해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또 하지원은 안재홍, 아나운서 김대호와 함께 MBC 추석 특집 예능 ‘마사지 로드’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주제처럼 하지원에게 배우와 작가의 일은 별개가 아닌 공존하는 것이다. 그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배우로서 제가 앞으로 가져가야 할 마음가짐에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얻게 됐다. 이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원은 영화·드라마뿐만 아니라 최근 다양한 예능에 출연해 인간적인 매력도 뽐내고 있다. 유튜브 웹 예능 ‘짠한형’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코미디언 정호철, 이혜지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정호철, 이혜지 부부는 이날 열린 하지원 개인전 개막 행사에 방문해 축하를 했고, 하지원은 두 사람에게 보디 드로잉을 선물하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이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허물없이 대중과 소통하는 하지원의 모습은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였다.
“‘짠한형’ 촬영했을 때 ‘되게 편해지고 좋아진 거 같아’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몰랐는데 술도 먹고 시시한 얘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더 많이 소통하게 되고, 또다른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요즘 너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