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막을 내린 인천 펜타포트는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한 국내 대표 록 페스티벌입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국내외 정상급 뮤지션이 이곳 무대를 거쳐 갔습니다. 올해 둘째 날 헤드라이너로 나선 영국의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선곡하며 관객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영국의 유명 밴드가 한국 뮤지션의 곡을 선곡해 공연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눈길을 끌기 충분합니다. 더구나 이 무대는 인천 펜타포트와 한국 관객만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앞서 핀란드 등 해외 공연에서도 선보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영어권 뮤지션에게 한국어 가사는 발음부터 의미 전달까지 결코 쉽지 않은 장벽임에도 한 곡의 상당 부분을 한국어로 소화하고 이를 해외 투어의 정식 레퍼토리로 선택했다는 점은 특별하게 받아들일 만합니다.
매시브 어택은 ‘시대유감’의 화제성에 기대야 할 만큼 인지도가 낮은 팀이 아닙니다. 1988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결성된 이들은 ‘Teardrop’, ‘Unfinished Sympathy’ 등 여러 대표곡을 통해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팀입니다. 심지어 ‘시대유감’의 원작자이자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는 서태지보다도 데뷔가 앞섭니다.
이러한 점에서 매시브 어택이 ‘시대유감’을 선곡해 해외와 한국 무대에서 선보인 사실은 글로벌 음악 교류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반갑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공연의 구체적인 연출과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마냥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 원작의 창작 의도와 역사적 의미, 왜곡된 재해석
공개된 공연장 스크린에는 “K팝은 독재와 부패에 맞선 저항의 시기에 태동했다”는 문구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영상과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6월 SNS를 통해 ‘시대유감’을 언급하며 현대의 아이돌 중심 K팝을 “철저한 경영 통제 아래 움직이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었습니다.
과연 ‘시대유감’에 5·18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이미지를 결합하고, 이를 다시 현대 K팝 산업 비판으로 끌어다 쓴 해석이 원작이 담고 있던 본래의 의미일까요? 타인의 작품을 공연할 권리와 그 창작 의도 및 역사적 맥락을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에 맞춰 재규정할 권리는 같은 것일까요?
원작자인 서태지는 1995년 인터뷰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무책임한 사람들로 인해 벌어진 비극’으로 규정하며, ‘시대유감’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압박받는 인간의 심리를 그린 곡이라 밝혔습니다. 이어 무책임한 어른들과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차라리 세상이 완전히 뒤집히기를 바라는 파괴적인 심리까지 담아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이 노래는 당시 존재하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일부 가사가 과격하고 현실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이유로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서태지는 가사를 고치는 대신 보컬을 모두 뺀 연주곡 형태로 음반에 수록하여, 창작 의도를 훼손하면서까지 심의 기준에 맞추지 않겠다는 저항의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인터넷과 유사한 여론 공간이었던) PC통신을 중심으로 공연윤리위원회와 가요 사전심의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습니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등을 거쳐 사전심의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시대유감’은 대중문화사에서 표현의 자유와 검열 저항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렇듯 당시 인터뷰와 곡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을 돌이켜 보면, 심의 제도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비판을 ‘시대유감’의 직접적인 창작 의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서태지가 노래를 통해 전달하려 한 핵심은 대형 참사를 낳은 무책임한 사회, 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변명과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기성세대,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뒤집히기를 바랄 만큼 극단으로 내몰린 분노의 감정이었습니다. 이후 사전심의 과정에서 가사 수정 요구를 거부한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비로소 검열 저항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의미가 후행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대중음악이 해외 뮤지션에게 단순한 이국적 소재나 이슈몰이용 도구를 넘어, 비평하고 재창작할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다가갔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매시브 어택이 ‘시대유감’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서사는 원작자의 창작 의도와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들이 재구성한 한국 현대사의 맥락 역시 실제 역사적 계보와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 과잉전유와 맥락의 재식민화
특히 ‘시대유감’이 5·18을 직접 다룬 노래가 아니고 원작자인 서태지가 두 사건의 연관성을 밝힌 적이 없기에, 공연에 5·18 민주화운동의 사진을 결합한 사회정치적 연출은 더욱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시브 어택이 ‘시대유감’을 5·18과 현대 K팝 산업 비판으로 연결한 것은 원작의 창작 의도를 충실히 복원한 결과라기보다, 사후에 형성된 검열 저항의 상징성을 빌려 자신들의 메시지를 구성한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비평적으로 원작의 의미를 필요 이상으로 점유한 ‘과잉 전유’, 그리고 한국의 작품과 역사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재배열한 ‘맥락의 재식민화’라는 문제를 남깁니다.
작품을 공연할 권리를 얻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역사와 창작자의 의도까지 자유롭게 재규정할 권한까지 얻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매시브 어택의 연출이 법적으로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는 엄격한 별도의 판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저작인격권의 본질이 창작자의 인격적 이익과 작품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번 공연이 원작자의 창작 의도를 충분히 존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작품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노래를 기술적으로 정확히 연주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작품이 어떤 시대적 문제의식 속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어떠한 수용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획득했는지를 구분하고 성찰하는 태도까지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