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아이돌. (사진=왁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련)는 지난달 “버추얼 콘텐츠가 성장할수록 그 뒤에서 음악을 구현하는 실연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세계아이돌을 비롯해 플레이브, 비던(B:DAWN) 등 버추얼 아이돌의 실제 가창 실연자들이 회원으로 등록됐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음실련의 이러한 결정은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한 버추얼 아이돌 시장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작년 5월, K팝 아이돌의 성지로 불리는 고척스카이돔에서 ‘이세계 페스티벌 2025’가 열렸습니다. ‘이세계아이돌’은 실제 사람이 전면에서 활동하는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과 다르게 인간 가수의 모습 대신 디지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버추얼(Virtual) 아이돌’입니다. 국내 버추얼 아티스트 최초로 헤드라이너 무대에 올라 태양, 선미, 보이넥스트도어 등 정상급 K팝 아티스트들과 공연하는 모습은 버추얼 아이돌이 이미 일부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브컬처가 아닌 콘텐츠 산업과 K팝의 거대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타버스나 NFT(대체 불가능 토큰)처럼 ‘한때 유행으로 지나가는 기술 시범용 콘텐츠’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깬 사건이었습니다.
다양한 아티스트의 저작권 업무를 담당해온 필자에게 유독 ‘이세계아이돌’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팬덤의 ‘저작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콘텐츠에 사용된 음악의 저작권이 정당하게 해결되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토론할 만큼 높은 저작권 의식을 보여줍니다. 저작권 담당자로서 긴장감과 함께 산업의 변화를 체감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버추얼 아이돌의 음악적 실체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과거 애니메이션이나 외화처럼 제작된 화면에 목소리를 입히는 사후 ‘더빙’ 방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버추얼 아이돌의 메커니즘은 전혀 다릅니다. 화면 속 캐릭터는 가상이지만, 그 캐릭터를 움직이는 동력은 실제 인간의 실시간 퍼포먼스입니다.
이 같은 방식은 필자가 운영하는 (주)메이저세븐이엔엠에서 음악저작권 업무를 맡았던 2022년 MBN ‘아바타싱어’나 2023년 카카오페이지 ‘소녀 리버스’(RE:VERSE) 등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당시 테이, 손승연, HYNN(박혜원)과 권은비, 오하영(에이핑크), 루다·수빈(우주소녀) 등 여러 실력파 가수들은 모션캡처와 트래킹 장비 등을 착용하고 직접 노래하며 춤을 췄습니다. 이들의 동작과 미세한 표정 변화는 실시간 데이터로 변환되어 화면 속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즉 관객이 보고 듣는 라이브 퍼포먼스는 단순한 디지털 그래픽이 아니라, 캐릭터 뒤에 숨은 실제 인간의 즉각적이고 생생한 표현 행위입니다.
따라서 버추얼 아이돌을 바라볼 때 화면 속 ‘캐릭터’라는 외형만 보아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하나의 버추얼 캐릭터 뒤에는 실제로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추는 인간 퍼포머의 실제적 표현 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그 내용과 방식에 따라 저작권법상 명백히 보호받아야 할 ‘실연’(Performance)에 해당합니다.
저작권법은 실연자에게 복제권, 배포권, 공연권, 방송권, 전송권 등 저작인접권상 실연자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방송사업자, 디지털음성송신사업자, 상업용 음반을 사용하여 공연하는 자들이 실연자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작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연자들의 인격권, 즉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보호합니다. 플레이브. (사진=블래스트 제공) ◇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내 캐릭터’가 한다면?
그렇다면 버추얼 아이돌 환경에서 실연자의 인격권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저작권법이 규정하는 ‘실연자의 인격권’은 모든 종류의 인격적 피해를 포괄하는 일반적 인격권이 아니라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 두 가지입니다.
대중에게 ‘A’라는 이름으로 공개되는 버추얼 아이돌과 그 캐릭터 뒤에 존재하는 인간 실연자 ‘B’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캐릭터를 제작·편집하는 과정에서 ‘A’의 머리색이나 의상 등 외형적 설정을 변경하는 것은 ‘B’의 구체적인 실연과 무관한 캐릭터 자체의 변형이므로, 원칙적으로 실연자의 동일성유지권 침해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반면 ‘A’라는 캐릭터를 매개로 표현된 ‘B’의 가창, 무용, 연기 등 구체적인 실연이 편집을 거쳐 내용이나 형식이 변경되었다면, 변경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실연자의 인격권, 즉 동일성유지권 침해 여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변경되거나 훼손된 대상이 단순한 시각적 캐릭터 ‘A’가 아니라, 그 캐릭터 뒤에 숨은 실연자 ‘B’의 ‘실체적 표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 캐릭터명을 인간 실연자의 ‘예명(이명)’으로 볼 수 있을까?
실연의 내용(동일성)뿐 아니라, 그 실연이 누구의 것인지 표시하는 ‘성명표시권’ 역시 버추얼 아이돌 시장에서는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버추얼 아이돌의 실연자 권리는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캐릭터 뒤에 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가창과 연주 등 실연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즉 일반적인 가수의 경우 자연인과 그가 사용하는 성명 또는 예명이 일대일로 매칭되지만, 버추얼가수들은 특성상 하나의 캐릭터를 시기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자연인이 실연할 가능성(1캐릭터-다수 실연자의 경우의 수)을 고려한다면, 버추얼 캐릭터의 이름과 특정 인간 실연자의 성명(또는 예명)이 꼭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믈론 현실의 성명이나 예명을 버추얼 캐릭터명과 결합시킨 다소 독특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앞서 언급한 ‘소녀 리버스’에서 버추얼 캐릭터 ‘도화’를 맡았던 찬미(AOA)의 경우, 프로그램 이후 본명을 ‘임도화’로 개명하고 활동 예명 역시 캐릭터명과 동일한 ‘도화’로 변경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버추얼 아이돌 팬덤에서는 실제 인간 실연자를 추적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래한 ‘빨간약’이라 부르며, 일종의 ‘불편한 진실’로 간주해 금기시하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이렇듯 캐릭터명과 실제 실연자가 분리되는 특성상, 권리관계 역시 캐릭터 단위가 아닌, 개별 음원이나 공연 등 ‘실체적 실연 단위’와 이를 수행한 ‘실제 인간 실연자’를 연결해 식별해야 합니다.
버추얼 아이돌의 실연자 인격권은 당연히 인간 실연자에게 귀속됩니다. 하지만 그 실연이 캐릭터의 이름과 외형을 통해 공표되는 특성상,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 행사에서 캐릭터와 실제 실연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통적인 실명·예명 기반의 가수 활동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문 버추얼 아티스트 특유의 이슈입니다.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실연자 권리 보호에서는 ‘어떤 캐릭터의 실연인가’보다 ‘어느 자연인이 행한 어떤 구체적 실연인가’를 정확히 특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높은 저작권 의식을 보여주는 팬덤과 급변하는 시장 속에서, 음실련의 이번 행보를 시작으로 법과 제도 역시 버추얼 아티스트 뒤에 숨은 실연자의 정당한 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더욱 촘촘하고 세심한 논의를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