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는 2군(퓨처스리그) 경기가 끝나면 근처 공중전화로 달려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전화 걸기에 바빴다. 이닝별 스코어는 물론 1번 타자부터 9번 타자까지 성적을 일일이 불러줬다. 1군은 수기 기록지를 팩스로 전송했는데, 여건이 안 좋으면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했다. 통화 시간이 길어서 뒤에 기다리던 사람들 눈총도 많이 받았다."
1991년 2월 입사해 지난해까지 1군 3376경기, 2군 385경기 기록지를 작성한 이종훈 KBO 기록위원장이 떠올린 추억이다. 이젠 전화로 기록을 불러주거나 팩스나 사진으로 수기 기록지를 전송할 일은 없다. 올해부터 1군에선 공식적으로 수기 기록지가 사라지고, 전산 기록지만 운영하고 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A4 용지보다 조금 더 큰 종이 안에 기록된 숫자와 기호를 통해 경기 중 벌어진 모든 상황을 표기할 수 있다.
KBO는 1982년 출범 후 수기 기록지만 작성하다가 1990년대부터 전산 기록지를 도입했다. 지난해까지 수기와 전산 기록지 작성을 병행하다가 올해는 1군에서 수기 기록지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안타와 실책 등에 관한 '판단'은 여전히 기록원이 내리지만, 공식 기록지는 전산 시스템만 이용하는 셈이다.
종전에는 두 명의 기록원 가운데 한 명은 수기, 나머지 한 명은 전산 기록을 담당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피치 클록이 시범운영됨에 따라 한 명은 전산 기록지, 나머지 한 명은 피치 클록에 관여한다. 이종훈 기록위원장은 "처음에는 기록원 한 명이 수기 기록과 피치 클록을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상당히 힘들더라. 기록원은 타구, 수비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안타와 실책을 판단한다. 그런데 두 가지를 병행하면 피치 클록 체크를 놓치거나, 기록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말했다. 박근찬 KBO 사무총장은 "피치클록 역시 야구를 잘 알아야 한다. 공식 업무이므로 기록원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1군에서 수기 기록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기록 강습회를 수강한 보조 요원을 채용, 공식 기록원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며 비공식적으로 수기 기록지를 작성하고 모은다. 이종훈 위원장은 "수기 기록지는 오류 시 수정 테이프로 지우면 된다.
그러나 전산 기록은 다르다. 예를 들어 7회 경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 5회 초 A 투수의 투구 수를 하나 빠트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잘못된 기록으로 되돌아가 수정하고, 이후 상황을 다시 입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때 수기 기록지가 필요하다.
또한 전산 시스템이 다운되면 실시간으로 기록하거나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는 데 수기 기록지가 활용된다. 반면 전산 기록지는 기록을 입력하는 순간 각종 데이터가 자동화돼 실시간으로 팬들에게 기록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 서울 동대문야구장 관중석에서 기록지 작성법을 독학한 이종훈 이원장은 "수기 기록은 프로야구 출범부터 함께한 한국 야구의 역사 중 하나다. 수기 기록지에는 기록원마다 취향과 색깔이 담겨 있다. 우리는 글자체만 봐도 어느 기록원이 작성했는지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수기 기록지가 사라지는 아쉬워하는 기록위원들도 있다. 이종훈 위원장은 "경기 종료 후 집이나 숙소에서 수기 기록지를 작성하는 게 어떻냐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현장을 떠나 기록하는 게 무슨 의미냐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수기 기록지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기록 자체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KBO가 올해 2월 초 개최한 기록강습회는 고작 33초 만에 200명 모집인원이 마감됐다. 역대 최소 시간이었다. 이종훈 위원장은 "기록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 기록원으로서 뿌듯하다"라며 "기록 현장에서 경기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차가 고장 나서 경기장에 지각하는 꿈을 지금도 꾼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