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는 극장가 최대 성수기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여름 시장을 맞아 국내 주요 배급사에서도 오랜 시간 공 들여온 알짜배기 작품들을 하나둘 내놓고 있는데요. 주요 배급사의 올여름 극장가를 책임질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국가대표’, ‘신과 함께’ 시리즈를 연출한 ‘쌍천만’ 흥행 감독 김용화가 또 한 번 여름 시장에 돌아왔다. 이번엔 감독이 아닌 제작자 겸 공동 각본가의 롤이다.
그의 신작은 오는 12일 개봉하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 짙은 안개 속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이 풀려나면서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블라드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감독은 ‘탈출’을 “주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원안은 (김태곤) 감독님이 가져오셨어요. 그때는 군인에 집중돼 있었는데 내부 회의에서 가족에 무게를 싣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후 박주석 작가가 초고를 썼고 전 윤색 정도만 도와줬어요. 얼개는 놔두고 맥락이 넘어가는 구간에서 거친 부분을 조금 걷어내고 리듬을 만들고 인물, 장면의 밀도를 높였죠.”
김 감독의 말대로 ‘탈출’은 재난물인 동시에 가족 영화로서 성격이 강하다. 정원(이선균) 부녀를 중심으로 치매 노부부, 골프선수 자매 등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중심 감정 역시 가족애, 그중에서도 부성애다. 이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제작했다는 김 감독은 극 중 정원과 비슷한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어 더욱 공감됐다고 했다.
“대다수가 어떤 중요한 순간에서 그걸 후회하며 못다한 걸 해주려고 하죠. 하지만 그땐 너무 늦고요. 이런 부분을 작품에 투영하려 했고 저 역시 울림이 컸죠. 다만 드러내기보다 설정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동시에 모두 같은 밀도로 가기엔 한계가 있어서 정원의 스토리에 집중했죠.”
가족애를 구축하는 캐릭터가 인물만은 아니다. ‘탈출’에는 군견(에코)이란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개를 모티브로 한 크리처를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김 감독은 방향을 바꾼 이유에 대해 “가장 가깝고 친근한 반려동물인 개가 인간의 욕망, 의지에 따라 흉악하게 변했을 때 느끼는 여러 감정, 거기서 오는 아이러니가 클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동의했다”고 말했다.
에코는 100% VFX(시각특수효과)로 구현됐다. 에코 외에도 조박(주지훈)의 반려견이나 실험실 장면에서 짧게 등장하는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컴퓨터 그래픽이다. 김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시각적으로 봤을 때 ‘개다’ 싶은 건 모두 만들어낸 허구다.
“개를 구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애니메이션이었죠. 생물이다 보니 몸집이나 중력감, 공격할 때 타격감이 다 달라야 했죠. 또 세컨더리 액션(1차 액션에 따라 움직이는 2차 액션)은 애니메이터의 세공인 데다 익숙한 동물일수록 어색한 부분을 쉽게 알아채죠. 그러다 보니 비용의 한계,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샷을 줄여나가면서 완성도를 높였죠. 손댈 수 있는 부분은 끝까지 만졌어요.”
이건 VFX 외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탈출’은 긴 후반작업과 끊임없는 편집을 통해 계속해서 완성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러닝타임도 칸국제영화제 출품 버전 대비 약 4분 줄었다. 스펙터클의 전시에 매몰되지 않고 절제된 분량에서 깊이를 추구한 거다.
김 감독은 “주연 비중을 세밀하게 밟았을 때 속도감, 스릴감이 더 살 거로 생각했다”며 “감정적으로 잘 쌓이지 못한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 구체적인 설명이 소구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만 보여줘도 충분히 (관객이) 예단한다. 귀결 과정을 간소화하면서 스피디하게 마무리되길 바랐다”고 부연했다.
‘탈출’을 남기고 떠난 고 이선균 이야기도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긴 시간 업계에 몸을 담았지만, 작품으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선균이는 위기에 몰린 조급함, 긴박함 속 흔들림에 대한 표현력이 되게 좋은 배우죠. 또 배우마다 연기법이 있는데 상황 납득을 위해서 감독과 오래 얘기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요. 보면서 감독에게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하게 하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고인을 떠올리는 김 감독의 얼굴에 일순간 쓸쓸함과 슬픔이 드리웠다. 이선균이 떠난 후 그의 유작을 개봉하기까지 어떻게 지냈느냐는 늦은 안부에 김 감독은 “주위 사람들, 특히 처(妻)가 많은 도움이 됐다.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느냐’고 묻더라. 행복했다고 했다. 그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김 감독은 이어진 ‘탈출’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달라는 요청에도 비슷한 답을 내놨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소중함이다. “누군가는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 있지만 ‘탈출’을 보고 나면 삶의 어떤 순간을 관통한 후 소원했던 모두가 소중해질 겁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