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할 일 없는 대기업 총수가 유치장에 발이 묶여 궁지에 몰린 회사를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의 얘기다. 법원과 검찰이 주장하는 구속 사유에도 의구심이 들지만, 김범수 창업자가 한동안은 갇혀있어야 할 게 뻔해 카카오의 미래에 낀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벤처 신화'에 투자한 개미들도 울상이다.
지난 1일까지였던 김 위원장의 구속 기간은 서울남부지법이 검찰의 구속 기한 연장 허가 신청을 인용하면서 오는 11일까지 연장됐다.
당초 업계는 김 위원장의 구속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법원은 예상을 뒤엎고 김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증거 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결정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라 도주할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조금 과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앞서 김 위원장과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도 붙잡아놓고 조사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아래 보석으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다음날 주요 경영진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 "어떠한 불법 행위도 지시하거나 용인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구성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는 초유의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회사를 구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현안을 살펴왔다. 수사망을 벗어나려 했다면 경영 일선에서 지휘하는 대신 잠적해 짧은 입장만 내놓으며 대응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법원의 설명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시세조종 의혹이 확산한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 합의는 작년 3월 이뤄져 1년이 훌쩍 넘었다. 금융감독원이 김 위원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은 약 8개월 전이다. 이에 앞서 카카오와 SM엔터 사무실의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일련의 수사 과정에서 걸림돌은 없었다.
김 위원장의 구속에 개미들은 비명을 질렀다. 구속이 확정된 날 카카오 10개 그룹사의 시가총액은 1조7000억원 넘게 증발했다. 카카오의 주가는 연초 대비 35% 이상 빠졌다. 주식 커뮤니티 한 이용자는 "카카오의 미래 투자는 갈 길을 잃었다. 최악의 악재"라고 한탄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의 구속 기간이 끝나는 대로 기소할 방침이다. 법원으로 넘어가면 구속 기간이 두 달로 늘어난다. 구속영장까지 신청할 정도로 중범죄를 확신한 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검찰은 김 위원장이 SM엔터 인수 당시 시세조종 과정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납득하기 힘든 사유를 들어가며 김 위원장을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불필요한 완력 과시 행위가 플랫폼 생태계를 넘어 시장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