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이저리그(MLB) 대표하는 슈퍼스타는 누가 뭐래도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이다. 올 시즌 MLB 사상 첫 50(홈런)-50(도루) 클럽에 가입한 오타니는 가장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선수로 MLB 선수 중 유니폼 판매량이 1위를 자랑한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1980년대의 오타니'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오죽하면 '페르난도 마니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발렌수엘라 역시 오타니(일본)와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 출신 선수가 아니었다. 멕시코 태생인 그는 축구에만 관심을 보인 조국 사람들에게 야구의 붐을 일으킨 존재였다. 1980년 9월 열아홉 살의 나이로 MLB에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훗날 다저스는 물론이고 MLB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페르난도 마니아'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발렌수엘라가 첫 풀타임을 소화한 1981년부터이다. 그해 발렌수엘라는 13승 7패 평균자책점 2.48로 맹활약, MLB 사상 첫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동시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게다가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WS)에서 팀의 우승까지 이끌어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은퇴 전까지 총 네 번의 포스트시즌(PS)을 치른 발렌수엘라는 통산 9경기(선발 8경기), 5승 1패 평균자책점 1.98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MLB 통산 기록은 173승 153패 평균자책점 3.54.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무려 113번의 완투, 31번의 완투를 해낸 '철완'이었다. 발렌수엘라는 다저스에서 11년간 뛰며 개인 통산 승리의 81.5%인 141승을 따냈다. 데뷔 시즌인 1980년과 부상이 있었던 1988년을 제외하면 매년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두 자릿수 승리를 해냈고 특히 1986년에는 21승으로 다승 1위, 사이영상 투표 2위에 뽑히기도 했다. 또한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90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노히트 노런까지 달성, 최고의 인기 선수로 군림했다.
발렌수엘라가 큰 사랑을 받았던 건 다저스라는 명문 팀의 에이스라는 이유도 있지만 로스앤젤레스(LA)라는 도시에 멕시코 이민자가 많이 살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은퇴한 지 27년이 흘렀고 다저스를 떠난 지 34년이 됐어도 그의 유니폼을 입고 적지 않은 팬들이 다저스타디움을 찾는다. 이런 확고부동한 팬층은 은퇴 후 발렌수엘라가 다저스 구단의 스페인어 방송 해설자를 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이 키킹, 와인드업을 하며 하늘로 치켜뜬 눈,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스크루볼로 타자들을 무력화시키던 발렌수엘라(지난 23일 별세)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다. 이번 WS에서 다저스 선수들이 부착한 34번 패치는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다저스의 우승과 '페르난도 마니아'에게 보내는 그의 마지막 염원과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