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구 롯데전에서 투수 감보아의 투구 폼을 보고 이야기하는 강민호(가운데)와 박진만 삼성 감독, 이진영 타격코치. SPOTV/티빙 중계화면 캡쳐
"뛰어도 될 것 같은데요."
삼성 라이온즈 포수 강민호가 한 마디를 하자, 주자가 뛰었다. 3루 주자의 홈 스틸 성공. 방송 중계를 본 야구팬들은 '강갈량(강민호+제갈량)이다'라는 익살스러운 표현과 함께 그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지난 27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은행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2회 말 상황이었다. 2-0으로 앞선 삼성의 2사 만루 찬스에서 3루 주자 이성규가 홈을 향해 뛰어 득점에 성공했다. 이어 1루 주자와 2루 주자도 진루해 '트리플스틸'이 완성됐다. KBO리그 9번째 진기록이었다.
상대 투수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한 플레이였다. 이날 롯데 투수는 알렉 감보아로, 왼손 투수로서 3루를 등지고 허리를 숙이다가 상대의 홈스틸을 보지 못한 것이다. 홈 스틸을 허무하게 내준 감보아는 2루주자 김지찬의 3루 도루도 뒤늦게 알아차리고 3루에 송구했으나 이마저도 늦었다.
롯데 감보아. 롯데 제공
감보아는 이날 최고 155㎞의 공을 던지며 9개의 삼진을 잡아냈으나, 4⅔이닝 4실점으로 조기강판됐다. 2회 빅이닝 허용이 결정적이었다.
강민호도 감보아의 투구폼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박진만 감독 옆에서 팀 동료의 공격을 지켜보던 그가 "(감보아가) 3루 쪽을 보지 않는다. 뛰어도 될 것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중계 방송을 타면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그 말이 실제로 이뤄지면서 더 큰 화제를 낳았다.
이튿날(28일) 만난 강민호는 "내가 사인 낸 건 절대 아니다"라며 웃었다. 강민호는 "투구폼을 보다가 지금 뛰어도 될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바로 주자가 뛰었다. 우연이 겹친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전 감보아의 이전 경기 영상을 보면서 투구 폼을 익힌 강민호는 발 빠른 김지찬에게 "네가 3루 주자로 나가면 (감보아가) 몸 숙일 때 뛰어봐라,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강민호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통했다"라며 웃었다.
27일 대구 삼성전에서 1루쪽으로 허리를 숙이다가 홈스틸을 허용하는 롯데 감보아. SPOTV/티빙 중계화면 캡쳐
다만 강민호는 "타석에서 정말 치기 어려운 공이 들어온다"라며 감보아의 구위에 감탄하기도 했다.
삼성의 트리플스틸은 철저한 전력분석과 치밀하게 짠 작전, 선수들의 플레이 등 삼박자가 제대로 들어 맞은 장면이었다. 강명구 주루코치는 "코치들 단톡방에서 감보아가 2군에서 던지는 영상을 공유해 약점을 파악하려고 했다. 감보아가 스트레칭하듯이 투구를 준비하는데, 경기에서 이를 놓치지 않고 이종욱 3루코치가 (이성규의 홈 스틸을) 잘 지시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진만 감독 역시 "경기 전 전력분석을 통해 상대 외국인 투수의 투구 폼을 감안해 주루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가 있었고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며 "이종욱 코치가 홈 스틸 판단을 잘해줬고, 선수들이 기민하게 움직여준 덕분에 초반에 많은 점수를 냈다"라고 선수들을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