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대 도미니카공화국 준준결승전. 3회 말 무사 1,2루 때 한국 투수 곽빈이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야구의 시계는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고 있지만, 한국 야구의 시속은 여전히 90마일(약 145㎞)에 멈춰 있었다. 이를 상회하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외면했다. 구속과 제구 과제를 동시에 떠안았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14일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패하며(0-10) 짐을 쌌다. 2009년 준우승 이후 17년 만에 본선 2라운드에 진출했지만 한 경기 만에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구위 격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경기 후 류지현 감독은 "국제대회에 나왔을 때 한국 투수들의 구속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학생 야구부터 차근차근 잘 만들어서 경쟁력이 있는 대표팀이 됐으면 한다"며 씁쓸한 현실을 인정했다.
류 감독의 고백은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미국 야구 통계 매체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이번 대회 한국의 평균 패스트볼 구속(이하 본선 1라운드 기준)은 90마일이었다. 20개국 중 18위. 8강 맞대결 상대였던 도미니카공화국이 평균 95.3마일(약 153.4㎞)로 전체 1위를 기록했고, 미국(2위·94.4마일)과 일본(4위·93.9마일) 등 강국들은 가볍게 94마일 안팎을 기록하며 한국과 확연한 체급 차이를 보였다.
류지현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감독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준결승을 하루 앞둔 1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훈련에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상 3년 전과 제자리걸음이었다. 2023년 대회 당시 한국 투수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89.9마일(약 144.7㎞)로 20개국 중 전체 16위에 머물렀다. 3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서는 평균 구속이 소폭 상승했으나, 순위는 오히려 두 계단이나 떨어졌다. 2023년 18위였던 대만(89.2마일·약 143.6㎞)이 올해 8위(92.9마일·약 149.5㎞)를 기록한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상향 평준화 속에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대회 주요 국가들의 95마일(약 153㎞) 이상 투구수 지표를 살펴보면, 미국이 2023년 42개에서 올해 139개로 대폭 늘었고, 대만이 3년 전 6개에서 올해 53개로 강속구 구사 비율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하지만 한국은 2023년 15개에서 올해 17개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여기에 '제구'라는 돋보기까지 들이대면 한국 마운드의 현주소는 더 암담하다. 한국 투수들이 던진 95마일 이상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MLB 게임데이 기준) 안으로 들어간 비율은 2023년 46.66%에서 2026년 41.18%로 오히려 하락했다. 전력투구를 하더라도 제구가 동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도미니카공화국은 이번 대회에서만 무려 107개의 95마일 이상 강속구를 존 안으로 꽂아 넣으며 압도적인 위력을 뽐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8회말 1사 2루 한국 김택연이 상대에게 1점을 허용한 뒤 교체되고 있다. 사진=연합뉴
이제 세계 야구의 트렌드는 단순히 '빠른 공'을 넘어 '제구가 되는 150㎞ 이상의 강속구'로 진화했다. 시속 150㎞의 공을 던지는 것조차 벅차고, 어쩌다 던진 그 공마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빈도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현재의 마운드로는 국제 무대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류지현 감독의 뼈아픈 자성처럼, 이제는 마운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당장의 임기응변이 아니라, 학생 야구 육성 단계부터 빠르면서도 정교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를 키워내는 일, 한국 야구가 마주한 가장 시급하고 무거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