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스튜디오의 야심작 ‘호퍼스’가 북미 시장에서 ‘코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지만, 유독 한국 시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의 독주와 작품 특유의 이질적인 분위기가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호퍼스’는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이 사람의 의식을 동물 로봇에 심는 ‘호핑’ 기술을 통해 동물 세계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4일 개봉한 ‘호퍼스’는 북미 개봉 첫 주말 약 4600만 달러(약 687억 7460만 원)의 수입을 올리며 1위에 등극했다. 이는 2017년 ‘코코’(5080만 달러) 이후 픽사가 내놓은 오리지널 작품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다. 특히 국내에서 724만 명을 동원하며 장기 흥행했던 ‘엘리멘탈’의 북미 초반 성적까지 갈아치우며 픽사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호퍼스’는 북미 개봉 2주 차 주말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 북미 누적 흥행 수입은 8680만 900달러(약 1300억 8850만 원), 월드와이드 누적은 1억 6470만 900달러(약 2467억 5488만 원)에 달한다. 이중 한국 누적매출액은 52억 6942만 3720원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호퍼스’는 북미의 폭발적인 반응과 달리 국내 성적표는 초라하다. 가장 큰 원인은 국내 박스오피스를 집어삼킨 ‘왕사남’ 신드롬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사남’은 6주차 주말(3월 13~15일) 사흘간 125만 3758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호퍼스’는 17만 3245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왕사남’의 상영 횟수는 2만 9207회, ‘호퍼스’는 7319회로 약 4배 차이를 보였다. 관객 수는 약 7배 가까이 벌어지며 ‘호퍼스’의 관객 동원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작품 자체의 성격도 국내 관객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호퍼스’는 성인 관객이 선호할 법한 블랙코미디 정서와 다소 기괴한 연출이 포함돼 있다보니 어린이 관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곤충 사회를 배경으로 여왕과 왕자 등 캐릭터를 외적으로 묘사하고 권력을 탐하는 과정 등이 있는데 어린이 관객을 타겟으로 하는 마케팅을 하다보니 괴리가 있다는 것. 실제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치고 수위가 묘하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봐도 되나”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3월 초 개학 시즌과 맞물린 개봉 시기 역시 가족 단위 관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정지욱 영화 평론가는 “‘호퍼스’가 북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데는 문화적 배경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여전히 대가족 중심의 가치가 중요하게 다뤄지며, 작품이 보여주는 할머니와 손녀의 서사가 공감을 얻기 쉽다”며 “반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소재가 대중적인 파급력을 갖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무엇보다 가족 단위 관객이 애니메이션 대신 ‘왕사남’이라는 확실한 대작을 선택하면서 직격타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