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하(29·두산 베어스)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임시 마무리’였던 그가 불펜의 중심을 잡고 두산의 반등을 이끌고 있다.
이영하는 지난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홈경기에서 1-1이던 9회 초 등판했다. 그는 공 12개를 던지며 1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3-3 무승부에 기여했다.
지난 2일 한화전에서 역투하는 이영하. 두산 제공세이브 달성 뒤 포수 윤준호와 하이파이브하는 이영하. 두산 제공 이례적인 등판이었다. 세이브 상황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그는 2일 한화전에서 3-1이던 8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이영하는 9회 초까지 1과 3분의 2이닝을 던졌다. 내용은 썩 좋지 않았다. 안타 5개를 맞는 등 2점을 내주고 어렵게 세이브(5-3 승리)를 기록했다.
투구 수 38개를 기록한 다음 날 이영하는 동점 상황에서 1이닝을 잘 막아냈다. 기록을 떠나 이영하가 두산 마운드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보여주는 연투였다. 김원형 두산 감독이 “현재 이영하가 (리그) 최고의 마무리”라고 치켜세우는 이유다.
2017년 두산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이영하는 2019년 선발로 활약하며 17승 4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했다. 두산 팬들은 22세 나이에 다승 2위에 오른 그가 선발 투수로 롱런 할 거라 기대했다.
이후 이영하의 커리어는 부침이 있었다. 구위는 강력했으나, 제구가 들쭉날쭉했다. 이듬해부터 선발과 불펜을 오간 그는 한 시즌도 2019년 성적에 근접하지 못했다. 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이영하는 두산과 4년 최대 52억원에 계약했다 이를 두고 ‘오버페이’ 논란도 있었다.
2025년 말 두산 지휘봉을 잡은 김원형 감독은 올 시즌을 구상하면서 이영하를 선발 후보에 넣었다. 두산 투수코치였던 2019년 이영하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영하도 지난 2월 호주 시드니 캠프에서 전력투구가 가능할 정도로 페이스를 올릴 만큼 의욕적이었다.
선발 복귀는 쉽지 않았다. 시범경기에서도, 부상으로 이탈한 크리스 플렉센을 대신할 때도 부진했다. 결국 불펜으로 내려갔으나, 존재감이 뚜렷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기가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다. 4월 말 두산 마무리 김택연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다른 자원들도 빠진 상황에서 이영하에게 중책이 주어졌다. 마무리 경험이 있는 데다, 구위가 뛰어난 그가 ‘임시 마무리’로 낙점받은 것이다.
어깨가 무거워지자 오히려 이영하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긴장감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되려 힘을 빼고 던지고 있다. 그런 데도 시속 150㎞ 초중반의 강속구를 펑펑 꽂아대고 있다. 떨어지는 변화구도 날카롭다.
이영하는 4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한 이후 12경기에서 15와 3분의 1이닝 5실점, 7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기간 볼넷을 8개만 내줬다. 블론세이브는 단 1개. 적어도 이 기간 그는 누구보다 강하고 안정적인 마무리였다.
게다가 이영하는 선발 투수 출신답게, 이닝 이터를 지향하는 투수답게 피칭을 아끼지 않는다. 8회 등판도, 연장전 등판도 신나게 하고 있다. 김원형 감독이 이영하를 믿고 활용하는 이유다.
이영하가 한 달 넘도록 뒷문을 잘 막아준 덕분에 두산은 하위권에서 탈출했다. 그사이 극상근(어깨) 염좌 부상에서 회복한 김택연이 복귀를 준비 중이다. 퓨처스(2군) 등판을 거쳐 이르면 다음 주 1군에 복귀할 전망이다.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가 돌아오기 때문에 ‘임시 마무리’의 새 역할이 궁금해졌다. 김원형 감독은 이영하의 역할을 바꿀 생각이 당분간 없다. 이영하가 마무리를 충분히 잘해주고 있는 데다, 김택연에게도 1군에 안착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영하의 ‘뜨거운 여름’이 김 감독에게 행복한 고민을 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