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허정무 감독의 모습. 사진=IS포토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16강 위업을 쓴 허정무 전 감독(69)이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허정무 전 감독은 최근 서울 모처에서 본지와 만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대표팀과 홍명보 감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허정무 전 감독은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월드컵과 연이 깊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서 대표팀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득점을 터뜨렸다. 4년 뒤인 이탈리아 대회에선 트레이너로, 1994년 미국 대회에선 코치로 활약했다. 1998년과 2002년도엔 해설자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대망의 하이라이트는 2010년 남아공 대회였다. 외국인 감독의 연이은 사임 뒤 배턴을 넘겨받은 허정무 감독은 강도 높은 세대교체와 실험적 기용으로 비판받고도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을 썼다.
허정무 전 감독이 최근 서울 모처에서 본지와 만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수민 인턴기자 무승부가 많았던 허정무호를 두고 ‘허무 축구’라는 우스갯소리도 많았지만, 본 대회에서 16강까지 오르며 한국 축구 새 역사를 썼다. 우루과이와 만나 1-2로 석패했지만, 경기력만큼은 밀리지 않아 많은 팬들로부터 박수받았다. 허 전 감독은 이후 2014년 브라질 대회선 대표팀 단장을 맡았고, 이후로도 행정가로서 월드컵 무대를 누볐다.
“나처럼 월드컵을 많이 다닌 사람은 없을 거”라고 웃은 허정무 전 감독은 이번 대표팀이 새 역사를 쓸 것이라 확신했다.
허정무 전 감독이 주목한 건 체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였다. 대표팀은 오는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대회 첫 경기를 벌인다. 한국 박지성(가운데)이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전서 추가 골을 터뜨린 뒤 기성용, 박주영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사진=IS포토 허정무 전 감독은 “남아공 대회를 돌아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첫 경기였다”면서 “첫 경기를 잡으면, 이어지는 2·3차전을 유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아공 대회 당시 허정무호는 1차전 그리스를 2-0으로 제압했다. 이어진 아르헨티나전에선 1-4로 졌으나, 3차전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며 16강행에 성공했다.
허정무 전 감독은 “북중미 대회는 참가국이 48개 팀으로 늘어나 전략을 더 쉽게 짤 수 있게 됐다”며 “조 편성 자체도 나쁘지 않다. 체코(FIFA 랭킹 41위)는 유럽 국가 중에선 약팀으로 꼽힌다. 남아프리카공화국(60위) 멕시코(15위)도 지금 우리 선수들이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비슷한 체구의 상대인 데다, 공을 자주 만지려는 상대 전술에 대해 한국 선수들이 쉽게 대응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 박주영의 득점 후 환호하는 선수단. 사진=IS포토 허정무 전 감독은 이번 대표팀을 두고 ‘한국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호평했다. 허 전 감독은 “(1986년 멕시코 대회 당시) 차범근, 최순호, 박창선, 김주성, 조광래 등 우리 때 선수단도 정말 훌륭했지만, 일부 선수를 제외하면 큰 무대에 대한 경험이 적었다”고 돌아보며 “하지만 지금 선수들은 젊은 나이임에도 벌써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라고 믿음을 드러냈다.
개선 과제 중 하나로는 전술적인 세트피스를 꼽았다. 허정무 전 감독은 “대표팀을 보면 경기가 안 풀리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약속된 세트피스가 있다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아공 대회 당시 대표팀은 세트피스로만 4골을 넣은 바 있다. “지난 2014년 대회에서도 홍명보 감독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게 기억 난다”던 허 전 감독은 “하지만 당시에는 세트피스서 썩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과거의 경험 덕분일까. 홍명보 감독은 멕시코 입성 전 “세트피스는 아직 노출하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한편 허정무 전 감독은 대표팀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전 감독은 “한국은 안방에서 월드컵 4강, 원정 대회서 16강까지 오른 팀”이라며 “월드컵 우승 팀도 꺾고, 유럽 챔피언도 이겨봤다. 이제는 16강 이상을 바라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훈련을 소화 중인 골키퍼 김영광(왼쪽부터), 정성룡, 김현태 코치, 이운재. 사진=IS포토 2010년 남아공 대회를 돌아본 허정무 전 감독은 “우리는 ‘유쾌한 도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주장 박지성을 중심으로 베테랑 김남일, 이영표, 안정환, 이동국 등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특히 “당시 월드컵 영웅 이운재가 후배 정성룡 선수를 위해 계속 다독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수들이 힘을 모았기에, 이 같은 성적이 나왔던 거”라고 돌아봤다.
끝으로 허정무 전 감독은 “모든 선수가 ‘내가 최고’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길 바란다.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며 “나는 지금도 우루과이전을 떠올리면 자책하곤 한다. 동점을 만들고도 추가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게 후회가 남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그렇지 않길 바란다”라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