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지난 14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폭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C조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에 0-1로 석패했다. 전반 28분 존 맥긴에게 결승 골을 내주며 승점을 얻지 못했지만, 경기 막판까지 끈질긴 추격전을 펼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월드컵은 아이티 축구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이티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1974년 서독 대회 이후 무려 52년 만이다. 남자 대표팀 역사상 두 번째 월드컵 본선 무대이기도 하다.
아이티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에 빠졌다. 갱단 폭력이 급증하면서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치안은 크게 악화했고, 대표팀의 홈구장인 실비오 카토르 국립경기장마저 무장 세력의 영향권 아래 놓였다.
결국 아이티 대표팀은 월드컵 예선 전 경기를 중립 지역에서 치러야 했다. 자국 팬들 앞에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선수들은 본선 진출이라는 기적 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아이티 축구 팬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포르토프랭스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공동 응원 공간을 마련하며 축제를 준비했다. 고질적인 전력난과 치안 불안 속에서도 월드컵을 함께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어떤 이들은 경기를 보러 모여들 팬들을 위해 폐타이어에 모래를 채워 좌석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티의 선전은 최근 불거진 월드컵 참가국 확대 논란과도 맞물린다. 알렉산데르 체페린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대회 개막 전 인터뷰에서 48개국 체제 확대를 두고 "전혀 흥미롭지 않은 경기가 생기게 됐다"라고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이티를 포함한 13개국 축구협회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체페린 회장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월드컵 경기는 없다"며 "전 세계 선수와 감독, 팬들의 열망을 인정하지 않은 매우 실망스러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아이티와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오랜 공백 끝에 월드컵 무대로 돌아온 국가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강조했다.
아이티의 52년 만의 월드컵 복귀는 단순한 스포츠 성과를 넘어선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위기, 홈경기조차 치를 수 없었던 수많은 역경 끝에 다시 세계 무대에 선 이들의 이야기는 승패 이상의 울림을 남겼다. 월드컵에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