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지만, 때로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낭만'도 만든다.
지난 5월 9일 경산볼파크에서 열린 퓨처스(2군)리그 롯데 자이언츠전에 삼성 라이온즈 우완 투수 최예한이 선발 등판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경기였지만 배터리 구성에 시선이 쏠렸다. 홈플레이트 뒤에 재정비 차원에서 2군에 내려온 강민호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야구 선수나 함께 호흡하고 싶어하는 리그 최고의 포수 강민호. 하지만 최예한에게 강민호는 단순한 선배 이상의 존재였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어린 시절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민호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캐치볼을 하던 아이들과 우연히 공을 주고받았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최예한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봤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줄도 몰랐는데 그날 처음 알게 됐다"며 "(캐치볼을 하는 우리를 본) 강민호 선배가 와서 캐치볼을 해줬다"고 회상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아파트에 강민호 선수가 산다"고 자랑했지만 믿지 않자 직접 찾아갔다. 강민호도 흔쾌히 최예한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특별한 추억을 선사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민폐였을 수도 있는데 선배님이 흔쾌히 사진도 찍어주셨다"며 웃었다.
당시 최예한은 야구 선수가 아닌 그저 야구를 좋아하는 동네 꼬마였다. 그는 "야구를 시작하는 데 강민호 선배 영향이 많이 컸다"며 "그 시절 야구를 좋아하던 어린이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답했다.
최예한은 포항제철중·포항제철고를 졸업한 강민호의 직계 후배이기도 하다. 그는 "선배 덕분에 포철중에 야구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부산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포항으로 진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월이 흘러 최예한은 그 우상과 실제로 배터리를 이뤘다. 팬들 사이에서는 '낭만 배터리'라는 반응이 나왔다.
최예한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아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며 "베테랑 선배님과 함께하면 배워갈 것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좋은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마운드 위에서 강민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 강민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잘 던지고 있다.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힘 빼고 자신 있게 던져라'고 말씀해주셨다"고 전했다.
강민호 역시 5월 1군 복귀 직후 최예한과의 등판에 대해 "나도 신기했다. 잘 성장해서 언젠간 1군에서 호흡을 맞춰봤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프로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교 졸업 당시에도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리지 못했고, 성균관대 진학 후 다시 도전한 2025 KBO 신인드래프트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두 차례 아픔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삼성의 육성선수 제안을 받아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삼성에 들어온 것 자체가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라 정말 좋았다"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강민호 선배를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사람 인생 모른다', '세상 참 좁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최예한은 올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13경기 2승 8패 평균자책점(ERA) 6.67를 기록하며 다소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퓨처스리그 17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3.90을 마크, 프로야구선수협회가 뽑은 리얼글러브 퓨처스리그상을 수상하는 등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제 목표는 분명하다. 최예한은 "제 장점은 꾸준함과 성실함"이라며 "1군 무대에서 팬들 앞에서 야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언젠가 1군에서 강민호 선배와 배터리를 이루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멋있게 던져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1군 무대에서 '낭만 배터리'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김수민 기자 bysumin@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