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은 잠시 내려놓고, 오직 주관적인 ‘덕심’과 ‘사심’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하는 스타 입덕 안내서입니다. 자꾸만 손이 가는 달콤 짭짤한 라면땅처럼, 보면 볼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스타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사진=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캡처 “아, 그냥 선배 말 좀 들으라고!”
tvN 예능 프로그램 ‘언더커버 셰프’에서 정지선 셰프가 내뱉은 말이다. 이탈리아의 한 레스토랑에 막내로 위장 취업한 권성준 셰프가 사수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답답함에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혹시 이 말만 듣고 ‘꼰대’ 같다고 느꼈는가? 누가 말했는지 모른 채 들었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말한 주인공이 정지선이라면, 특히 ‘언더커버 셰프’를 본 시청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언더커버 셰프’는 정지선, 샘 킴, 권성준 등 스타 셰프 3인이 본인 요리의 기반이 된 본토 식당에서 ‘주방 막내’로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이다. ‘중식의 여왕’ 정지선은 중국 청두의 초대형 연회장 주방에 투입됐다. 이름은 ‘써니’, 직업은 ‘전직 복싱 선수’라는 가짜 프로필을 품은 채로.
사실 방송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잘나가는 셰프들의 성공 신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닐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장 취업 첫날, 정지선이 따로 챙겨온 주방용 신발을 가슴에 꼭 껴안고 다소 긴장된 얼굴로 매장으로 향하는 순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끈 몇 개와 버려도 되는 옷을 챙겨 들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향했던 내 대학 시절 첫 아르바이트 날이 겹쳐 보였다.
그렇다. ‘언더커버 셰프’는 스타 셰프들의 잘난 체를 구경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아무리 숙련된 대가라도 마스터(대가) 이전에 시작이 있었고, 낯선 환경에서는 실수할 수 있으며, 결국 그 서툰 과정을 버텨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성장 예능’이다. 여기에 ‘5일 만에 주방 막내에서 메인 자리까지 진출해 신메뉴를 개발해야 한다’는 미션을 더해 예능적 재미와 쫄깃함까지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과거 자신의 초년생 시절을 추억하며 공감과 재미, 감동이라는 세 가지 맛을 동시에 음미한다. 사진=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캡처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플레이어가 제 몫을 못 하면 무용지물인 법. 현재 세 명의 플레이어 중 정지선 셰프만이 유일하게 6월 셋째 주 펀덱스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지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중이 그의 활약에 열광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재미있는 건, 방영 전 사전 투표에서 ‘막내로 들어오면 가장 좋을 것 같은 사람’ 꼴찌가 바로 정지선이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를 것이, 정지선은 여성 셰프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한 중식계에서 악과 깡으로 버텨낸 인물이다. 중국 현지 밑바닥부터 시작해 노골적인 차별을 견뎠고, 경력 단절이 무서워 출산 전날까지 일했던 ‘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대중에게 정지선은 그저 눈화장이 짙은 약간의 꼰대(?) 이미지, 혹은 예능에서 에피소드를 푸는 대단한 성공 신화의 주인공 정도였다. 흔한 성공담이 으레 그렇듯 가슴 깊은 울림까지 주진 못했다.
하지만 ‘언더커버 셰프’를 통해 직접 목격한 그의 태도는 단순한 ‘운이나 재능’이 아니었다. 주방에서 정지선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도 120가지가 넘는 메뉴판을 닳도록 분석하고, 한국보다 훨씬 무거운 현지 웍을 손에 익히려 선배들에게 “이것 좀 가르쳐달라”며 끊임없이 고개를 숙인다. 대가의 자리에 오르고도 다시 바닥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모습.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특수환 환경이긴 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가 왜 ‘중식계 원티어’가 될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간다.
평소라면 웨이팅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래도 방송을 통해 그의 집요한 노력과 일에 대한 태도를 목격한 이상, 이제 정지선 셰프의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 단단한 태도가 고스란히 배어있을 중식 요리라면, 기꺼이 긴 줄을 서서라도 꼭 한 번 맛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