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은 영화 ‘호프’의 작업 과정을 묻자 너스레를 떨면서도 완벽주의적인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개봉을 일주일 앞둔 지금도 믹싱실을 오가며 사운드를 다듬고, 크리처의 손가락에 묻은 피 한 방울까지 직접 확인할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호프’는 비무장지대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전체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5월 열린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나 감독은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사실 어제도 믹싱실에 다녀왔다. 전체적인 레벨을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믹싱실에서도 이제 그만 오라고 하더라”며 “한 장면에 들어가는 사운드 트랙만 1700개에 달한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그는 “하루도 못 쉬었다. 크리처 손가락에 묻은 피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애니메이션 감독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지고 있다. 콘셉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스트레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탈을 씌워서 했으면 됐을 텐데 왜 이 짓을 했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으로 알려지며 공개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호프’다. 나홍진 감독은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 감독은 “떨린다”며 “이제는 영화가 순도 높은 장르물로 축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시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시장까지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로벌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장르 작품이라는 말이 맞아요. 일반적인 한국영화 구조를 갖춘 영화를 기대하는 대중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어요. 그 부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떨리죠.”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나 감독은 수많은 소재 가운데 크리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영화제에 출품할 때 카테고리가 몇 개 없다. 정교하게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SF를 넣었다. 넣을 게 없었다”며 “SF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하고, 걔네들이 외계인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런 비주얼이다. 크리처물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나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찾아다니지는 않는다”며 작품을 기획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살을 붙여 나가고 키워 나가고 있다”며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제가 느낀 분노나 안타까움 같은 보편적인 감정들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곡성’에서 초자연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그 이상을 이야기하려고 했죠. 더 상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고민했더니 우주까지 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외계인이 나왔죠.”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결국 황정민이 중심에 있었다. 나 감독은 황정민에 대해 “믿을 수밖에 없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황정민은 여러 퍼포먼스를 하고, 그걸 증명해내는 대단한 인물”이라며 “황정민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도박을 할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영화 초반 50분은 전형적인 클리셰 장면이죠. 꼭 필요한 초반 장면을 이상적인 장르로 만들고 싶었어요. 황정민이 혼자 뛰고, 달리고, 걷고, 숨는 장면을 사실 순서대로 찍은 것도 아닌데 점층적으로 표현해내주셨죠.”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그는 작품 속 메타포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 관객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영화 속 외계인의 존재 역시 결국 인간을 비추기 위한 장치였다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외계인도 정말 늦게 등장하죠. 그걸 시작으로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룰 것 같으면서도 결국 다시 인간에 대한 초점으로 돌아와요. 영화에 등장하는 메타포를 감독인 제가 직접 말하는 게 맞을까 싶어요. 개개인마다 다르게 해석했을 텐데, 각자의 해석을 존중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영화 속 외계인의 관계와 결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홍진 감독이 작품에 담고자 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속편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속편 가능성을 묻자 그는 “감독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