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의 토종 에이스 고영표가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ABS 도입 이후 투구 스타일을 바꾸며 적응에 성공한 고영표는 경기마다 달라지는 스트라이크 존의 체감 차이가 선수들에게 다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고영표는 지난 1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시즌 15승을 거두며 다승 단독 선두에 올랐다. 오는 한국시리즈(KS)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삼성을 상대로 5이닝 1실점(비자책) 호투를 펼치면서 타이틀은 물론 모의고사도 완벽하게 해냈다.
경기 후 고영표는 "내 공을 잘 치는 투수들이 삼성이 많다. 구자욱, 류지혁, 김지찬 선수도 그렇고 좌타자도 많다. 그래서 항상 경계를 하고 볼 배합을 한다"면서 "이제 중요한 시리즈(KS)가 남아 있는데, 실마리는 ABS에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는 "오늘 경기도 보셨겠지만 ABS 존이 갑자기 낮아졌다. 선수들은 그 부분이 곤란하다"며 "선수들은 ABS 존을 토대로 늘 준비하는데, 갑자기 변화가 생기면 그 순간 바로 대처해야 한다. 그게 또 어렵다"고 토로했다.
'ABS가 경기 도중 바뀐 것인지, 이전 등판과 달라진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고영표는 "이전 등판과 다르게 확 낮아졌다. 오늘 상단 존에 안 걸치는 걸 초반에 체크를 하고 체인지업을 낮게 느리게 그냥 툭 던졌는데 그게 스트라이크 걸리는 거 보고 '야, 이게...' 했다. 미세한 차이일지 몰라도 마운드에서 보는 체감은 엄청 크다. 그래서 이 ABS가 진짜 야구 판을 확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강조했다.
KT 고영표. KT 제공
그동안 달라지는 ABS 존에 대해, 타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투수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건 드물다. 특히 고영표의 이 한마디가 유독 신뢰를 얻는 이유는, 그가 ABS 체제 아래서 가장 극적인 진화를 이뤄낸 투수이기 때문이다.
KBO리그는 ABS 도입 이후 스트라이크 존 상단으로 오는 공의 이점이 명확해졌다. 정교한 제구력과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스트라이크 존 하단을 공략, 땅볼을 유도하는 사이드암 투수 고영표에겐 다소 난감한 변화였다. 고영표도 실제로 도입 초반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고영표는 존 상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받아들였다. 하이 패스트볼을 완벽하게 던지는 방법을 체득하고 커브 그립도 바꾸는 등 ABS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그는 올 시즌 전반기에 큰 위기를 겪었다. 그는 "5월 달까지 공 구위가 좀 약해서 구속도 떨어지고 그게 되게 고민이었다. 작년부터 이어졌던 고민이라 투구 폼 메카니즘을 계속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는데 5월 달까지 잘 안 나왔다. 5월까지 2승밖에 못 했다"고 털어놨다.
11일 경기 후 만난 KT 고영표. 대구=윤승재 기자
고영표는 운동역학적으로 투구 폼을 가다듬고 피치 터널링을 완성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감독님이 어드바이스를 해 주시고 코치님들이 도와주신 부분들이 6, 7월 가면서 메커니즘이 좋아지고 공이 좋아졌다. 공이 좋아지면서 제구도 좋아지고 구위도 좋아지니까 상단 존 안에 투구를 제가 잘할 수 있게 됐고, 그 상단에 치기 어려워하는 타자들의 루킹 삼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스위퍼 그립을 바꿨고, 떠오르는 커브가 생겼다. 구위가 좋아지니 체인지업도 잘 떨어지고 직구도 높게 힘 있게 갔다. 인내하면서 노력한 것들이 쭉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ABS를 직접 극복한 장본인이다. 그는 ABS의 원리와 맹점까지 가장 직관적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는 "홈플레이트 위에 있는 가상의 존이 참 신기하다. 구위가 좋아지면 더 잘 걸리고, 구위가 약해지면 더 안 걸린다"며 ABS 존 통과의 본질이 결국 투수의 '몸 쓰임'과 '터널링'에 있다는 기술적 통찰을 전했다.
고영표는 누구보다 ABS의 특성을 치열하게 분석해 자신의 무기로 만든 선수다. 보더라인을 찌르는 정밀한 공을 던질 수 있는 에이스이기에 그가 던진 "존이 낮아졌다", "야구판을 확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KS를 앞둔 고영표는 "ABS로 인해서 그 경기의 테마가 설정이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KS에서도 ABS가 과연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철저한 연구와 적응 끝에 15승을 수확한 고영표의 시선은, 이제 가을야구의 승패를 가를 ABS라는 변수로 향하고 있다.